도대체 왜 내가 회사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이스라엘의 역사철학자 유발하라리는 인류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공동체 의식 결여를 꼽았다. 극단적 전체주의가 인류 역사상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현생 인류의 가장 결정적 특징이자 장점은 대규모 협업이 가능한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하라리는 현생인류가 지난 1만 년간 생물학적으로 변한 것이 거의 없으며 개인의 능력과 지식이 진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개인 차원으로 보면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자연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원시인들이 현대인보다 오히려 다재다능하며 강인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인류의 진보는 개인 차원의 발전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진화를 통한 인류공동체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어느 회사에서든 직장과 직장 동료들에 대한 공동체 의식은 구시대 유물이 됐다. 이런 가치를 강조했다가는 반감만 사기 딱 좋다. '도대체 왜 내가 회사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라고 말이다.
- HBR NO 261.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변의 변
일단 하라리가 이스라엘 사람이었구나에 띵~ 했다. 이노무자슥! 그들이 팔레스타인에게 하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만행들이 결국 전체주의의 왜곡된 행위들이 아니던가.. 적어도 히라리에겐 극단적 전체주의자 들에 대한 우려는 현재 진행형이어야 하지 않은가..
요즘 구인공고에 가족같은 회사라고 공고를 하면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좆같은 회사로 명명되어 그들만의 가십거리가 된다. '도대체 왜 내가 회사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라는 맥락이다. 물론 모두는 아니지만, 대다수의 '갑'은 '을'을 구성간 역할로 구분 인식하지않고 계급으로 구분 인식해왔다.
회사에 자금 흐름이 정체 중일 때는 형편이 좋지않아서, 자금 흐름이 원할 할 때는 바빠서, 또는 미래를 위해 '을'들의 형편은 뒤로 밀린다. 경험상, 없을때 '을'을 배려하지 못하는 '갑'은 있어도 을을 배려하지 못한다. 강아지 버릇 남 못준다고. 그런 '갑'들에게 여유가 생기면 딴 생각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을 배려할 수 있는 '갑'이 꾸준히 간다.
사실, 어떻게 하든 알게 뭔가. 아쉬운 사람이 따르면 된다. 제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하는 '을'이라도 내일 당장 '갑'이 된다면 그들도 다를게 없을 수 있다. 직면한 현상을 '선'과 '악'으로 판단하는 것은 동화나 드라마에나 나올 수 있는 일이다.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순간 늘 억울한 인생이고 모든 불행은 타자화 된다. 비겁한 행동이다. 어리광일 뿐이다.
직면하자.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고 스스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나열해보자. 나의 행동/영향 반경을 가늠하여 일머리의 순서를 조율해보자..
앞으로 내가 을이 되거나 또는 갑이 되거나 어디한번 적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