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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ink normal
느린 날들이 모여 멀어져간 오늘../Post-이팔청춘

30. 서른즈음에...

by 청춘만화 2011. 4. 6.



서른즈음에
 









서른 해를 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또한 배우고 있다.
매순간 살아있음을 느끼고 설레임에 감사한다.


1.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잠을 자고 한살 두살 나이가 먹으면서 우리는 늘 많은 문제들을 직면하게 된다.
그것이 내 인생의 큰 꿈이건 내가 소속된 회사의 프로젝트이건 오늘 먹을 점심 메뉴이건
그리고 그 문제들은 많은 것을 변화시키게 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따라 
스스로의 삶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 시기가
17살 청소년기 6년간의 송아지 짝사랑이 떠나가고 선배의 소개로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부터였다. 사람은 아프기 때문에 죽거나 실패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먼저 좌절하기 때문에 실패하고 절망하기 때문에 죽은까지 이르는 정신적 신체적 병에 걸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2)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결국, 의류패션학과 전공을 바꾸기로 선택하던 순간
어머니와의 짧은 대화가 
이후 지금까지 내가 벽에 부딛치거나 절망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좀 더 생산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갖을 수 있는 나를 만들어 주었다.

아   들 : " 결국 이렇게 될 꺼였는데, 진작 예고를 보내주지 그랬어, 그럼 더 좋았을거 아냐 "
                          (20대 초-중반이라 말투하며 말하는 태도하며.. 아직 철이 없었다..)
어머니 : " 만약 그때의 아들이 지금처럼 정말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누가 말려도 
               넌 했을 꺼야. "

맞다. 꿈은 이뤄진다.   다만, 그 꿈을 정말 간절히 원했다면.

3)
대부분의 디자이너 또는 할 껄 하고 후회하는 지망생들을 보면 
어느정도 반볻되고 비슷하게 말하는 레파토리가 있다.
" 집안 형편이 안 좋아 예고 진학을 포기했다. " 하지만 몇몇은 디자이너가 되었고 몇몇은 늦은 나이까지도 가슴 한켠에 아쉬움을 담고 살아가곤 한다.

4)
처음엔 막연한 꿈이었다.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어야지. 대상도 모호했고 목적도 모호했다.
다만, 허세나 겉치레가 없는 그저 "리얼"한 그 무엇.  
스물 넷. 
그렇게 노멀하지 않는 normalstory가 만들어졌다.




2.
그 당시 내가 생각하고 만들었으면 하는 노멀스토리는 글로벌한 브랜드였다. 
이제, 그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우선 글로벌에 앞서 브랜드로 만들어야 했다.

1)
현실의 나는 지방의 대학교 학생. 집안은 정말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중산층도 아닌 중하층이었다.( TV에서 나오는 다큐멘터리에 주인공이 우리 아파트에 우리보다 큰 평수였고 더 잘 살고 있었다. ) 
게다가 디자이너를 하기엔 역부족인 신체조건(국내에서 브랜드 패션디자이너로 취업하기 위해서는 정말 최소한,그리고 무조건, 남자는175이상,후덕하지않은 체형,여자는 44반55에 160이상이어야 한다. 학벌,출신,외모,성적,유학 여부는 일절 중요하지 않다.)이었다.
뿐만아니라 그냥 디자이너로서 디자인만해서는 살아남을 수 가 없다. 
재무, 소득신고, 세금, 마케팅, 생산관리, 유통, 서비스..정말 알아야하고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2)
어쩌지? 이걸 어떻게 다 배우지?
이쯤하면 거의 경영자 수업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도 들었다.
이제 막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는데 온통 벽과 장애물들 뿐이었다.
머리엔 온통 사업? 글로벌 브랜드?  바람만 들어서 허무맹랑 하기만 한건 아닌지.
또한 무엇을 해야하는지.. 주변에 물어 볼만한 사람도 없는데 온통 고민과 막연함 뿐이었다.

3)
문제해결1
(a)  비록 전과를 하고 패션과 마케팅 브랜드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한 상태였지만
       역시 좋아서 하는 것과 할 줄 알아서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2학년 전과를 해서 일년만에 나쁘지않은 성적으로 대부분의 수업을 이수했다.
       그리고 대학 생활동안 난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ㄱ) 무역 또는 마케팅을 복수전공할까 하다가 미술학부 서양화, 조소, 시각디자인 수업을 전부 
            듣기 시작했다. 결국 서양화 복수전공 학사를 받았다.
            -> 대학을 다니는 동안 디자인에 전념(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능성을 키우자) 
      ㄴ) 첫 사회 생활은 영업이다. 
            -> 마케팅 그리고 기획은 책상 앞에서 책으로, 가르쳐주는 걸 먼저 배우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정답이 없는 것을.  각자 그리고 매순간 바뀌는 상황을.
                더군다나 책상에서 연필로..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 선입견이나. 그릇된 눈높이를 갖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정답을 정의하기 전에 먼저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ㄷ) 한살이라도 젊을 때 발로 뛰자. 그리고 나서  기획을 경험하고 마케팅을 배우자. 
            24세, 그렇게 첫 10년 계획을 세웠다. (공병호님의 책을 맨토로..) 

(b)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전과를 하고 복수 전공을 하면서 졸업을 1년 가량 앞두고 취업을 할 수 있었다.

(c) 27세, 10년 계획은 아직 저만큼 멀리 있는데, 젊은 혈기에 나는 매사 뿔이난 심보였다.
      버*루 브랜드를 동경하면서 동네 아줌마 스타일로 디자인하고 영업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의 매출 때문이라지만,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다 될 때까지 변화는 커녕,
      이젠 아줌마 아저씨 브랜드로 기획/디자인 방향을 굳혀 버렸다. 
      마케팅을 제안 해봐도 비용이 들어간다며 ,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 대부분 시간과 인건 비만 낭비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d) 차라리 내가 하겠어! 
      그렇게 대치동에 멀티샵을 만들게 되었다. 

4)
문제해결2
(a) 돈이 어디서 나서 내가 창업을 해? 
      게다가 카페면 돈도 많이 들텐데.. 
      인테리어며.. 커피머신..엔틱가구.. 커피는 어떻게 해? 커피도 모르면서 -_-

(b) 그래도 다행인건 내가 무엇이 없다는 것과 무엇이 필요한지가 명확하다는 것이었다.
      좀 많아서 문제이지만..

(c) 우선 로스터리 샵에 알바를 하면서 커피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맛을 익혔다. 
      또한 문화를 배웠다.? 아니, 느꼈다.
      두어달 후 부터는 본격적인 학습에 들어갔다.
      우선 평일에는 '파스쿠치'에 입사해서 커피를 배웠다. 
      (압구정로데오->코엑스 : 기간별로 로테이션)
      주말에는 홍대 '마이퍼니쳐'에 무보수로 일을 했다. 
      눈 넘어로 핸드메이드 가구의 제작 과정과 단가,가격에 대해 배웠다. 
      평일 일이 끝나거나 출근전에는 시장조사를 했다.
      ( http://bit.ly/k88yom )
           ㄱ)하나는 매장 시장조사를 했다. 
                서울을 걸어가며 지도에 체크를 하고 소비자 조사, 카페 위치, 주변 상권, 
                유동인구와 이동 시간, 술집의 위치, 월세가격, 전세가격, 월세와 전세의 비율, 
                거주비율(원주민,지방직장인,학생비율),거주자들의 평균 연봉, 평균연령대, 
                옷차림, 주요 사용하는 브랜드..etc
           ㄴ)다른 하나는 인테리어 조사이다.
    을지로 3가 라인의 가게 명함과 부품별 가격조사, 설치비 등을 비롯해 
    원목을 들여오고 가공하는데 드는 비용 ( 원목은 동대문,을지로도 몇군데 있었지만 
    운반 등을 고려해서 양재에서 주로 사용했다. )




3.
왠 카페?
왜 먹어보지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카페 ?

(a) 일상에서 카페라는 곳은..
ㄱ) 패션을 하면서 알았다.
     지장조사는 백화점이 아니라 카페에서 할때 보다 정확하다.
     이를테면 이렇다.
     ' 당신은 시간이 나면 어딜가는가? 친구와 만나면 어딜가는가? 공부는 해야겠는데 
       따분한 분위기가 싫으면 어디로 가는가?  약속장소가 딱히 없다면? 나 혼자 있고 
       싶을 때는? '

ㄴ) 로스터리 카페에서 처음 커피를 접하고 향을 접하고 맛을 느낄 때 쯤 
     한남동 할아버지 할머니 스님들..수녀님들의 발길과 그 모습을 보면서 
     ' 아- 이런게 라이프 스타일이구나 ' 를 느꼈다.
     허세나 거드름이나 폼 따위가 아니었다. 그냥 소소한 일상이었다.
     원산지며 가격이며, 어디가 원조이며, 직접 로스팅을 했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다.

     노멀스토리는 일상예술공간, 정말 개나 소나 다 쉽게 오는.. 
     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또는 알게 되는
     그런 미치도록 가벼운 공간 그리고 감성..이 있는 그 흔한 카페..가 되길 바랬다.

ㄷ) 패션이 아닌 IT를 하는 요즘도 카페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요즘은 이런색을 많이 입네.. 요즘은 이런 스타일을 많이 입네.. 심리가 이렇쿠나..
     사람들이 아이폰은 이런사람들이 쓰고 안드로이드는 이런사람들이 쓰네..
     그리고 카페 옆테이블에서 이런 종종 듣는다. 정말 자주.
     ' 야, 너 마이 피플 써봤어? 카카오톡은? 야 다음 모바일은 왜그래? 네이버는 어떻쿠?
       안드로이드는 정말 자주 뻑-나! 아이폰도 장난아니야, 넌 무슨 어플써? 
       야, 그건 쓰지마!  헐- 넌 아직도 그거써? 야 이건 뭥미? 왜 아무것도 없어? 
       이런건 꼭 깔아 놔야돼- '

(b)단순이 물건을 디자인하거나 파는 곳이 아닌..
ㄱ) 나만의 브랜드를 작게나마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옷만 파는 옷가게는 싫었다. 안봐도 눈에 훤했다. 
     가끔 길가다 마주치는 이름모르는 디자이너 샵... 
     디테일한 설명 없이도 누구나 그런 경험 있을 것이다.
     노멀스토리의 
     이름에 맞게 소통할 수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그런 공간.
     정말 좋은 옷, 정말 싼 옷은 여기가 아니어도 정말 많다.
     노멀스토리는 그런 것들을 파는 곳이 아니다.
     여기는 퇴근 길 아버지의 땀 냄새가 그리운 셔츠를 맞추는 곳이다. 
    ( http://bit.ly/l85GU1 ) 
    (물론, 남녀 노소 다 만들어준다)

ㄴ) 그래서
     노멀스토리엔 간판이 없다.
     돈 들여서 하는 홍보도 없다.
     일상에 도움이 될 만한 짧은 글들을 카페 앞에두어 가져가게 하거나
     싸이월드 카페를 운영하면서 손님들하고 수다를 떨었다.
     혼자오시는 아저씨 교수님들과 같이 어울려 수다를 떨고
     고딩들과 수능얘기를 하고 정치에 대한 뒷담화, 부동산 시세..재건축? ㅋ
     그냥- 거창할 것 하나 없이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것이다.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모르면 모르는데로 어설프면 어설픈데로..

(e) 우리는 (노멀스토리와 노멀리스트)
      함께 파티를 기획하고 사진을 찍고 정보를 공유하고 작은 스터디 교실을 만들어 함께 
      지식을 나눌 수 있었다.  웹 매거진을 기획하고 인디밴드의 음반을 제작해서 판매도 했다.
      언젠가 부터 책 만드는 꿈이 있던 사람들이 만나 나만의 책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주말엔 가로수길에 쉬는 매장 주차장에 옹기종기 모여 프리마켓을 열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프로젝트가 완벽하게 끝나고 엄청난 성과를 이룬 것은 아니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니던 아주머니는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악세서리를 팔기 시작했고 
      병원을 끊고 조그만 강의도 하기 시작했다. 고3 힙합 여학생은 나만의 앨범을 만들었고 
      반응도 좋았다. 퇴사를 하고 고민하던 인디 작가는 프리랜서 일을 시작했고 퇴직을 하고
      작은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게 된 누나와 아주머니,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게 되고.. 
      ( http://bit.ly/lTDKmA )
      나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
      서로에게 정말 많은 에너지가 되었다.
     
      이런게 브랜드 아닐까?
      돈으로 쳐 바른 삐까뻔쩍한 , 그럴싸한- 또는 외국의 선남선녀들이 브로셔를 도배하는 
      유러피안 스타일리쉬나 핫- 잇- 가쉽- 엣지- 뭐 대충 이런거 말고- 
pr은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고
ad는 돈으로 치장을 하는 것이고
마케팅은 비록 안 그런 것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이다. 



4.
...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늘 허기졌던 부분이 있었다. 
집단의 지성.
다소 사탕발림 소리 같지만, 진심으로 힘과 그 필요성을 깨닿게 알게 되었다.

사업을 하는데는 결코 돈이 중요하지 않다. (선 후배 중 대부분이 돈 많이 주는 회사에서 한 10~15년 정도 바짝 일해서 모은 돈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데.. 난 항상 그들에게 그건 아니라고, 결코 돈이 우선이 아니라고, 돈을 모으는데 그 많은 시간을 버리는건 아니라고 항상 말하지만.. 망한 녀석이 입만 살아서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반응이다.)
물론 전혀 필요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금. 다시말해 돈을 모으기 위해 인내하고 젊음을 투자하거나 또는 그것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쪼개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투잡이나 또는 퇴근 후 취미생활, 주말을 이용한 자기개발..이 아닌,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추구하는 집단의 지성.
내가 생각하고 꿈꾸고 하려는 것을
함께 추구하고 함께 고민하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발전. 도약을 하기에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고 
정말. 그 흔한 카페의 젊은 주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5.
그렇게 노멀은 잠시 접고 지금 일하는 곳 대전의 작은 연구소로 일터를 옮기게 되었다.
빨랐다. 충분히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과 너무 똑같았다.
2004년에도 POZ라는 스마트폰을 섰었다. 그리고 옴니아 1을 샀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런 환경이 구축된다면 모바일 시장은 엄청나 질 것이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되는게 고스톱이나
DMB밖에 안되서 지하철 버스에서 다들 그것들을 보지만, 스마트 폰 환경만 조성된다면 엄청난 
시장이.. 정말 어마 어마한 시장이 생성될 것이다.. 아, 앞으로는 결재 서비스와 컨텐츠 시장이다 !
(물론, 옴나아 1은 4_5개월만에 환불받았다. POZ와 같은 이유로..)

2010년 5월 3D디자이너/UI디자이너로 연구소에 참여하게 되었다.
2008년 부터 모바일을 이용한 마켓 (안드로이드 : LBS, 3D UI, 상품 바코드, 현장 결재 ) 정부과제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직 뼈대 작업 밖에 안돼 있었지만 충분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아닌, 우리니까.
( http://bit.ly/lW17FU ) 


하지만, 한달만에 내부적으로 갈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만해서 모바일 시장이 된다 안된다의 말이 많았다. 그리고 서비스 구현이 현실적이냐 
아니야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그리고 그로인한 사장님과 이하 직원간의 세력? 다툼..  )
결국, 삼 개월 후 나를 뽑았던 차장님과 과제 책임자였던 소장님이 퇴사를 하게 되었다.




6. 
나는 어쩌지? 나도 퇴사해야 하는 건가?

비겁해 보였다.
누군가에 의해 , 누구가 때문에 무언가를 못한다는 생각과 태도가.
그들은 퇴사를 하면서도 늘 욕을 했지만 사실, 그들의 먹여 살린것은 회사이고
아무 직원에게도 알리지않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면서 까지 직원들 월급을 챙겨주셨던 사장님이었다.

앞을 진행하고 이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직접 모바일 시장에 대한 시장 조사를 하고 세미나를 듣고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샘플링을 했다.
QRcode에 대한 연구를 하고 디자인 관련 책을 출판하고 조그만 강의도 하면서 회사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 http://bit.ly/kYQP03 ) 샘플을 만들어 세미나 또는 관련 모임에 가서 회사 명함을 나눠주었다.
브로셔를 만들고 비치함에 비치하고 블로그도 만들었다.( http://bit.ly/iUuQsH )

아직 남아있는 다른 직원들과 사장님께도 설득했다. 
다행히 관련 사업을 따올 수 있었다. 점차 직원들도 모바일 관련 서비스 제작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상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 http://bit.ly/kYQP03 )
사무실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것의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UX라는 것 또한 이런게 아닐까? 
상품이 만들어지는 것에 관련된 디자인 뿐만이 아닌. 
기획에서 만들어지고 또한 판매되고 그것을 구매자가 경험하고 그 이후에 영향을 미치는 
전반적인 프로세스와 단 단계에서 페르소나가 주는 반응과 피드백 뿐만이 아닌.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태도..생각..가치관..까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또는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
이를테면 두달동안 좁은 철창에 갇혀 키워지다 팔려나가는 닭보다, 산에서 자란 닭이랑..
다소 비약이 심할 수도 있지만.. 라마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7.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그동안의 지난 일들과 그 일들에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해 기술을 해보았다.
몇일간 이 글을 쓰고 다시 읽어가면서 그렇게 한해 한해 돌이켜보면서. 마음을 다시한번 다질 수 있었다.

 
한때는 누구나처럼 오른손이 되고 싶었다. 때론 내가 사장이어야 했고, 내가 그 프로젝트를 만들거나 
내가 기획하고 만들었다는 이름 석자가 선명히 나와 있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왼손의 역할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깊은 애착을 갖기 시작했다.
스트레이트를 날리기 전에 날리는 잽처럼
스파이크를 날리기 전에 몸의 방향과 균형을 잡아주는 왼손은 그리고 그 역할은 
이를테면 박지성 같은.
다시말해, 골 결정력이 매우 뛰어나거나 득점을 많이 올려주는 메인 스트라이커는 아니지만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쉬지않고 뛰어 줌으로써 팀전체를 매니지먼트해 줄 수 있는..

하지만 실제 삶에 있어서 그런 역할이 때론, 전반적으로 어설픈 모양새 또는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 젠 결국 뭐하는 얘야? '
' 그러니까 넌 뭘 하고 싶은 건데? 도대체 넌 전공이 뭐니? ' 
' 넌 다 중간이네?  깊이가 없어. '


하지만 분명히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이것 또한 내가 풀어야 할 많은 문제들 중 하나라 생각한다.
앞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만나러 갈 생각이다.

함께 집단의 지성을 이해하고 만들어갈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들을.






P.S.
박칼린 누나가 그랬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또한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말한다.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안철수 박사님이 공부를 못해서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였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가치관과 근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 가족이나 본인 또는 나라의 신체/신변의 문제 )
환경은 절대적인 벽이 될 수 없다..
열악한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를 바라보는 열악한 태도와 근성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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