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지극히 편향되고 주관적일 뿐만아니라 - LLM이라는 기술적이나 Feature적 측면이 아닌 과거 인간의 인지 범위의 변화에 따른 - 개인적 사유의 기록이다. 개인적으로 생활코딩 실습을 하면서 해당 기술에 대한 리뷰를 남긴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Gpt 4o API 실습을 진행하면서 -특히 선으로 그림 도형에 대한 면적응 구하는 문제-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과정에서 느꼈던 - 나중에 보면 창피할지도 모를 - 개인적 소회를 남겨본다.
OpenAI GPT 4o API 실습에 대한 리뷰
1. 첫 느낌, 멀티모달에 대한 보편적 접근성
👉 2. 느낌의 배경,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feat. 할루시네이션)
북 | 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우리가 사물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 즉 경험과 연역이 있다. 사물에 대한 경험은 종종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반면, 연역 즉 어떤 하나를 다른 하나에서 끌어내는 순수한 추리는 - 물론 주의하지 않을 경우에 가끔 빠트릴 수는 있지만 - 오성에 의해 혹은 이성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잘못될 수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감각(특히 시야)’이 외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 참된 모습을 제공하고 있다고 해서 외적 사물은 언제나 보이고 있는 그대로 있다고 (오성이) 판단하지만 않는다면, 오성은 경험에 의해 결코 기만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판단을 내릴 때에 오류에 빠지기 때문이다.
과거 포스팅했던 내용의 일부
지난번 시각 감각에 대해 포스팅했던 내용의 일부
시각은 꼬이고 비틀리고 겹치고 역상으로 전달된다. 시각의 감각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투자하여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으면 좋겠다.(최낙언)
그리고 아래는 작년(2023) 프롬디자이너에서 'UX 심리학' 북스터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각 중심 주의, 심도 인지에 대한 자료를 찾으며 정리했던 내용 중 일부이다.
북 | 이미지란 무엇인가
이솔
경험을 통한 인식이 오류에 빠지는 이유는 주어진 경험에 관해 섣불리 '판단'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어진 경험이 사실이라고 의심 없이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잔에 들어 있는 막대기가 구부러져 보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류는 그러한 시각적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저 막대기는 구부러져 있다'고 판단할 때 성립한다. 오류란 주관의 경험 자체가 아니라, 주관의 경험과 객관적 실재가 잘못 짝지어질 때 발생하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 주관에 주어진 상이 실재를 정당하게 반영한 것이라 보장할 수 없다. 밤하늘에 뜬 달은 높이 솟은 고층 건물보다 작은 것처럼 보이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거꾸 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렇듯 우리의 경험이 종종 오류를 저지른다는 사실에 따르면, 원리상 경험은 '항상'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ChatGPT와 같은 LLM 인공지능(AI)이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이나 환영, 환청)이라 하는데 위 내용을 비추어보면 사실 할루시네이션은 인간( 다른 말로 편향, 인지부조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LLM은 파인튜닝이나 RAG 또는 새로운 프롬프트를 통해 지난 오류에 대한 판단을 손쉽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인간은 새로운 정보를 추가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기반으로 과거의 판단을 조정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북 | 성찰
르네 데카르트
나는 지금 두 눈을 부릅뜨고 이 종이를 보고 있다.
내가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이 머리는 잠 속에 있지 않다. 나는 의도적으로 손을 뻗어 보고, 또한 느끼고 있다. 내가 잠자고 있을 때 이런 것은 이처럼 판명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꿈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속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이런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깨어 있다는 것과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구별해 줄 어떤 징표도 없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성찰』, 36)
나는 코기토cogito 다
이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모든 감각을 멀리하며, 물질적 사물의 상을 내 생각에서 모조리 지워 버리 자. 이런 일이 힘에 겹다면, 적어도 이런 상을 공허 하고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무시하자. 오직 나 자 신과 대화하고, 내면을 깊이 살피면서. 내 자신을 점점 더 알려지게 하고, 내 자신과 더 친숙하게 만 들어 보자, 나는 사유하는 것이다.(『성찰』, 56)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모든 지식의 토대가 된다. 이 최초의 지식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속임을 당 하고 있다는 사실 위에서 발견된다. 물론 전능한 악 신은 온갖 종류의 환영을 통해 나를 기만할 수 있 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가 꾸며 낸 이미지들을 실재 라 믿음으로써 다시금 오류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 러나 악신이 나를 속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속임을 당하고 있는 내가 있어야만 한다. 데카르트가 발견 하는 나의 최초의 모습은 이처럼 '속임을 당하고 있 는' 나, '거짓된 표상들을 가지고 있는' 나이다."나 는 있다, 나는 현존한다."(성찰,, 44)
여기에서 다시 한번 '지금 이것은 꿈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이미지에 관한 선입견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의식에 주어지는 이미지와 의식 바깥의 실재를 분리한다.
의식 내의 표상인 이미지는 분명 실재를 모사한 것이지만, 그것이 실재와 올바르게 대응하는지를 판가름할 분명한 기준은 없다. 나의 의식에 주어진 것 들이 잘못된 표상일지 모른다는 불안. '이것은 꿈은 아닌가?'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불안은 '전능한 악 신의 가설'과 함께 모든 지식에 관한 극단적인 회의 로 치닫는다.
흥미롭게도 데카르트는 문제가 되는 상황 자체를 수용하는 방식을 택한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이미지들이 거짓일 가능성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참과 거짓을 더 이상 판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그래 좋다, 우리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치자.”(「성찰,, 36)
나에게 주어진 이미지들이 참인지 거짓인지 를 의심하는 나는 존재한다. 이미지들이 진실된 것 인지 거짓된 것인지와 무관하게, 이 참되거나 거짓된 표상들에 대하여 사유하고 있는 나의 존재는 확실한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나는 사유하는 것이다. (Ego sum res cogitans)"(『성찰,, 56) 이것이 온갖 환영과 가상들로부터 눈을 감고 내면을 응시하는 가운데 데카르트가 발견해 낸 최초의 확실한 인식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감으로써 데카르트는 그토록 희구하던 진리에 가닿는다. 진리는 그 어느 곳도 아닌 자신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Je pense, donc je suis)”라고 쓰며, 『철학의 원리』에서 이는"Ego cogic, ergo sum"이라는 표현으로 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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