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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ink normal
느린 날들이 모여 멀어져간 오늘../말로만 듣던 마흔

적응하는 것과 의존하는 것의 차이

by 청춘만화 2021. 5. 1.

 

화장실에서 아이폰을 떨어뜨렸다.

아이폰 화면에 톰브라운st 로 흰색 줄이 갔다.

잠금해제가 안된다.

잠금해재 7,8,9 라인이 터치가 안된다

 

일단 유심은 잠자고 있던 light phone에 옮겼다. 

( light phone는 킥스타터로 2년?전에 펀딩해서 받은 폰으로 전화와 문자만되는 예쁜 쓰레기. 이하 예쓰로 통일한다. 예쓰는 예쓰답게 연락처가 없다. 스마트폰과 동기화가 녹녹치 않다. 그리고 문자 기능은 있지만.. 한글 입력이 안된다. 한글로 수신은 되는데 한글 자판?이 없다. 이즈음하면 왜 예쓴지 이해하리라고 본다.) 

 

사실 잠수형 초식남이 되어버린 마흔 싱글에게 폰이 고장나서 연락이 안된다는 건 그리 큰 이슈는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문제가 조금 다르다. 

지난 화요일 소개팅을 했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마흔 싱글남이 일곱살 연하와 소개팅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 지금 이 시간 두번째 만남이 있어야 할 시간에.. 난 지금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다.

 

주선자에게 연락할 방법과 소개팅녀와 연락할 방법, 심지어 가족과도 연락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 스마트폰이 나왔을쯤에는 가족 핸드폰 번호 정도는 당연히 외우고 다녔지만 각자의 폰번호가 두번 세번 바뀐 다음부터는 내려놓은지 1년 2년된것 같다.

 

그래 카카오톡을 pc로 접속하면 되지.. 하고 카카오톡에 들어가려는데 PC용 카카오톡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물어본다.

' 아- 카카오톡에 아이디가 있었던가? 패스워드? 패스워드가 있었던가? 늘 페이스 ID와 패턴 잠금해제로만 들어갔던것 같은데...?' 연이어 다음 아이디로 로그인을 시도했지만 실패.

결국 아이디 패스워드를 찾기로 들어갔다. 세가지 옵션이 있지만 크게 휴대폰 번호로 인증하는 방법과 다음 메일로 인증하는 방법이 있다.

먼저 휴대폰 인증을 클릭했지만 나의 예쓰는 응답이 없다. 왜 수신이 안되는걸까? 통신사에 1:1 문의를 남겼지만 답변이 없다. 그렇게 카카오톡 로그인 실패.

다음 메일은 2차 인증을 해두어서 로그인이 불가하다. 이전 폰으로 인증을 해야하는데 잠금해재가 안되기 때문이다. 예쓰는 물론 어플이 없어 2차인증 수신이 불가하다.

 

이즈음 되니까, 마흔에 들어선 - 참고로 아직 생일은 지나지 않았다 - 초식남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단,

이런 삶이 디지털 식민지의 삶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디지털 식민지 세상에서 스스로 아날로그적 삶을 지양한다는 것은 스스로 이방인을 자처하는 꼴이었다. 아날로그적 삶은 단순히 태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립이었다.  

언제부턴가 이메일처럼 스팸이 부쩍 늘어난 카카오톡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용을 줄이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지난번 보안이슈 이후 비번을 계속 바꾸라고 해서 두 세번 바꾸다보니 로그인할때마다 매번 패스워드를 다시 설정한다. 물론 대부분은 자동로그인되지만.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 

카톡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안한다는 것. 아니,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은 단절 그 이상이다. 이는 단순히 주변과의 단절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된다. 마치 옆 동료 가족과 함께 살고 대화하고 밥을 먹지만 어떤 서비스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완전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카톡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앱이 스마트폰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너무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기획일을 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프레임', '서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아마 일상용어로 한다면 '생활양식' 정도가 될것 같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인간은 도구(서식 또는 생활양식)를 만들고 도구는 다시 인간을 만든다. 모두가 동의할 수는 범주는 아무래도 상식, 문화, 도덕, 인간의 존엄성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일상의 사례로들면, 대화 예절은 문자 예절로. 문자 예절은 카톡과 인스타 예절로. 최근엔 전달하는 사람의 메시지가 아닌 수신하는 사람의 타이밍(단말기 상태, 앱의 설치상태*)으로도 파생되고 있다. -지금 나의 상황이 여기에 해당한다. 카카오톡에 대한 이해와 사용환경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수신이 지연되는 상태는 상대방에게 비상식적인 태도로 평가될 수 있다. 초등학생에게는 데이터가 될 수도 있고 인플루언서에게는 영상도구가 될 수도 있다. 종종 유튜브 라이브 중에 딜레이나 소리 등 이슈가 발생하는 댓글창은 상당히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고, 물론 바로 나가버리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일 것이다. 하드웨어적 인프라에도 그것을 이용하는 방식에도 생활양식, 소위 프레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이슈가 더해진다. 과거에 목소리로 전달하는 대화나 전화 그리고 문자는 거의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 채널이었다. - 요즘엔 카톡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까지가 매스 커뮤니케이션 채널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에서 이탈된 것이다- 앞서 말한 생활양식의 서식이 시장의 롱테일과 같이 다변화, 로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었고 이것들은 디지털 도구로 인해 점덤 타이트해지고 있다. 10대가 주로 사용하는 SNS에서는 그들만의 생활양식이 고도화 되고 있고 중국이나 유럽, 혹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는 서비스는 그 나름데로의 생활양식을 고도화되고 있다.  

정량적(혹은 물리적)으로는 국가 또는 지역을 이루고 있지만 정성적(혹은 상태적 또는 실질적? 인지적)으로는 파편화되고 있는 상태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과거(춘추전국 시대 또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양식간 대결과 다른 점은 파편화된 각각의 양식간 다툼이 촉발 시키는 조건이 좋은 점(또는 선호)을 기준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나쁜 점(최소한의 상식)을 기준으로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활양식 측면으로 비유하면 '이뻤으면 좋겠고, 성실했으면 좋겠고, 건강했으면 좋겠고....등'과 같이 선호 조건이 아니라 나는 '최소한 나보다는 커야해 또는 나보다 조금 작았으면해.. 등'과 같이 최소한의 기준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은,

이러다 죽으면 고독사가 되는구나- 라며 조금 더 직접적인?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상황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핸드폰을 떨어뜨린지 이제 52시간 정도가 되어간다. 그동안 택배 출발, 도착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어렴풋, 문앞에 택배를 두고 가시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기계 음성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출 전화와 주식 문자 몇 통을 받았다. 

 

 

그리고 그 두 생각은 나의 삶은 지금 적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의존하고 있는가 를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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