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에 대한 소고
독일 대통령 불프와 함부르크의 한 시민단체는 "투명성은 신뢰를 창출한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고 한다.
물론 국내 기업과 정부 정책 뿐만아니라 개개인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에서도 키워드에서도 개방성과 투명성, 신뢰 경제는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다분이 상식적으로 들리는 이 구호는 사실 상당한 모순을 품고 있다.
신뢰는 앎과 모름 사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더이상 ‘신뢰’의 단어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모름이 모조리 제거된 투명한 상태에서는 신뢰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불행히도 정직이나 성실같은 도덕적 가치들은 어느새 구태가 되어버렸다.
투명성을 주장하는 까닭은 이미 신뢰가 없음을 전제하고 있고 단지 통제할 구실을 찾기 위한 정량적 근거 데이터를 확보 전략은 아닐까? 상식과 공정을 위한 투명성을 주장하기 전에 스스로에세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어보인다.
P.57
게오르크 지멜은 이렇게 쓴다.
"절대적으로 잘 안다는 사실, 심리학적으로 다 퍼냈다는 사실 만으로 우리는 기존의 도취없이 말똥말똥해지고, 관계의 생생함은 마비된다. 오직 인간 전체를 품는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도 내면의 사유재산을 존중하고 비밀의 권리 를 통해 질문의 권리를 제한하는 다정함과 자기 절제만이, 모든 드러난 마지막 너머의 진짜 마지막을 어렴풋이 느끼고 존중하는, 관계의 생산적 깊이를 보상으로 받는다."
오늘날의 사회를 사로잡은 투명성 열정을 감안할 때, 거리의 열정을 연습할 필요가 있을 법하다.
더구나 인간 영혼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염려없이 자 기 곁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 틀림없다.
페터 한트케의 문장
"나는 타인들이 나에 관하여 알지 못 하는 바에 의지하여 살아나간다."
오로지 기계만 완전히 투명하다. 하지만 인간 영혼은 기계가 아니다. 무릇 삶의 본질인 내면성, 자발성, 사건성은 투명성과 대립한다. 다름 아니라 인간의 자유가 총체적 투명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투명한 관계는 어떤 끌림도 없는 죽은 관계다. 오직 죽은 것만 투명하다. 투명성 강제가 제대로 파괴하는, 인간적 현존재 및 함께 있음의 긍정적이며 생산적인 범위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계몽일 터이다.
완전히 투명한 것은 실은 공허뿐이다. 이 공허를 추방 하기 위하여 방대한 정보가 유통된다. 더 많은 정보가 방출될수록, 세계는 한눈에 굽어보기가 더 어려워진다. 방대한 정보는 어둠 속에 빛을 비추지 못한다.
투명성은 빛이 아니라 빛 없는 복사, 환히 밝히는 대신에 모든 것을 꿰뚫어 투명하게 만드는 복사다. 꿰뚫어 보임(복사, 투명함)은 환히 보임이 아니다.
〈철학 잡지Philosophie Magazin》, 철학자 피터 싱어와 줄리언 어산지 대화록 중
어산지 자신은 "투명성을 그리 옹호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자신은 주위 환경에 관한 정보가 더 많아지면 주위 환경에 관한 결정을 더 잘 내릴 수 있다는 "얄팍한 철학" 에 의지할 따름이며, 자신이 한 행동의 동기는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
어산지는 오늘날 총체적 이데올로기로 격상하는 투명성에 대하여 회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그는, 오늘날 인터넷은 정교한 대규모 감시 시스템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한다. 그 시스템은 암'처럼 확산한 다면서 말이다.
오해를 막기 위해 명확히 밝혀두는데, 부패 척결이나 인권 보호를 위한 투명성에 대해서는 반발할 것이 전혀 없다. 그런 투명성은 환영할 만하다.
투명성 비판이 겨냥하는 표적은 투명성의 이데올로기화, 우상화, 총체화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투명사회가 통제사회로 탈바꿈할 참 이라는 점이 우려를 자아낸다.
무수한 감시 카메라는 우리 하나하나를 의심한다. 신체를 철저히 조사하는 알몸 스캐너는 현실적인 효용을 넘어서 우리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알고 보면 인터넷은 디지털 파놉티콘이다. 모두가 발가벗는다. 이것이 통제사회의 논리다.
http://aladin.kr/p/eQF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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