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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날들이 모여 멀어져간 오늘../삼팔광땡

그 흔한, 삼팔광땡의 일기일회(一期一會)

by 청춘만화 2019. 7. 21.

맥락없이,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우문을 던져본다.

 

오늘, 조금 전에 뮤지컬 메피스토를 보고와서 그런지 모른다.

어쩌면 어제 밤에, 우연히, 예전 내가 남긴 블로그 글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think normal... 044 (t.꿈꾸지마. 열정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_2010.10.21 09:01

think normal... 043 (t.인간으로서의 삶) 2010.10.21 09:04

think normal... 042 (t.안돼.불가능해.웃기지마.지금 그 자리에서는 말야)

 

' 이게 뭔가- 이거 내가 쓴건가..? ' 말투며 내용이 세상 다 산 20대 후반의 내가 어쩡쩡한 삼십대 후반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어정쩡한 20대 중반까지의 삶과 다르게 20대 중후반은 모든게 명확했다. '하고 싶은 데로 가. 이 한 몸 책임지면 그만이지 뭐. 지금 이 자리에서 푸념만하고 있다면 늘 그자리 그대로 있을 뿐이야. 선택은 본인이 하는 거야.' 라며 거침없던 시절에 넘길 포스팅들이다. 

시간이 지나, 그 유명한 '서른 즈음'에, 그 흔한 '여러 사연에 의해',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그것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문화도 다르고 생존 방법과 환경 모두가 바뀌었다. 뭔가 과거보다는, 상대적으로, 지적 능력은 올라간거 같은데 가야할 길은 끝이 없고 공허하다. 또한 노동자가 자신이 창출한 노동가치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경제의 기본원리이듯 노동과 노동 사이에는 언제다 갈증이 있다. 

모르는게 약이라고 했던가. 사장이 되어보고 나니 제 형편도 모른체 그들의 처지를 살피게 된다. 적절함이 없이 주는데로 받는다. 이렇게 머슴근성이 싹트기 시작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회사도 아니고 뿐만아니라 내 위치가 임원이나 관리자도 아닌데 자리에 맞지않는? 걱정을 하고 계획를 제안하며 설레바리를 쳐댄다. 공허한 외침이다. 쌍방, 그런걸 기대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조직과 사회는 그 자리에 맞은 역할과 책임이 필요하다. 그래야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해와 역할이 축적이 될때 경영자는 더 나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제 역할을 찾아 헤메고 헤메인다.  

언제부턴가, 하늘 높은지 모르고 뻗히던 생각과 즉각적으로 추진하던 행동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재해석하려던 태도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일상의 작은 고민들이 가시덤불처럼 내 곁을 감싸고 있다. 그렇다 별거 아닌 일들이 별거가 되어 버렸다. 소심하면서 그 소심한 쪽으로 과대망상이 싹을 피운다. 그 싹은 물론 꽃이 아닌 가시덤블로 자란다. 가만이 있으면 이 가시들은 더욱 더 내 피부 깊숙이 박힐 것이고 그 덤블을 걷어내려고 하면 자해적으로 내 손가락 발바닥 마디 마디에 꽂힐 것이다. 맞다, '어찌보면 일상의 작은 고민과 그 해결이 오늘의 나를 실존적으로 지탱해줄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일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오늘을 버틴다. 

 

그래 그랬다. 십여년 전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 길을 선택했나'가 마지막? 아니, 첫 시작이었던 것 같다. 사업이 자리잡기 시작할때 가족과 연인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선택했다. '뭘하는게 뭐가 중요한가- 누구와 하는 게 더 중요하지'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하지만 지금 내곁에는 그 '누구'도 없고 그 '무언가'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뭘하는 가. 그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하는가' 그것이 그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게하는 까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금, 이 포스팅을 쓰면서 생각나는데로 나열해본다. 그렇게 나는 내 캐릭터, 컨텐츠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내 컨텐츠를 보고 온 사람들 인연들 그리고 그런 나를 지지해준 가족들이 있었지 않을까? 어쩌면 수년.. 아니 벌써, 십여년 전에 나는 '누구'를 위해라는 핑게로 '무엇'으로 부터 도망친 것은 아닐까?

 

기승전결없이, 생각이 흐르는데로, 내가 도망친 그곳은 어떤 곳이었는지 한번 생각해보기로 한다.

값싼옷, 비싼옷 또는 좋은옷으로 구분되는 시대은 끝났다. 중요한 것은 그 옷이 어디에  누구와 있느냐 이다. 그 미치도록 가벼운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공간과 맥락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맥락은 제조자가 아니라 그 공간에 오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커뮤니티가 부여한다. 그들은 파티를 하고 공연을 하고 스터디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상품을 제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이 문화와 어울리는 스타일의 옷을 만들어 판매한다. 올해의 컬러 패션쇼, 트렌드가 아닌 그 미치도록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마이크로트랜드를 기반으로 옷이 완성된다. 그렇게 공간은 플랫폼이 되고 그 공간에 들어오는 이들은 단순히 손님이 아닌, 공급자겸소비자인 네트워크 매개자(이를테면 3rd party)가 된다. 매개자는 자신이 참여하고 제조하는 컨텐츠 또는 상품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네트워크를 플랫폼에 이어 붙이게 된다. 이러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옷가게가 아닌 카페로 공간을 구성한다. 그 옛날 카페라는 공간은단순히 맛있고 신선한 커피를 마시는 곳 이기 이전에 사회적 이슈에 대한 토론과 철학, 예술적 네트워크로서의 역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 think normal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허접했다. 지금처럼 개인 카페가 넘쳐나는 시기도 아니었고 개인 또는 소규모로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하던 시기도 아니였기 때문에 손님들과 업계 사람들의 과분한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러한 일들은 오로지 막무가네- 적인 태도 덕분이었다. '이번 한번은 제대로 실패해보자'라는 생각이었다. 잃을 것이 없을 나이었다. 돈? 그 돈을 위해 사회 초년생이 4~5년간 어렵게 얻은 반지하 전세를 월세로 전환했다. 그렇게 마련한 1,500만원으로 대치동 은마아파트 후문에 있는 작은 상가 안쪽, 통로 끝자락에 간판도 없는 '그 흔한 카페, 노멀스토리'가 만들어 졌다.    

 

그때, 블로그에 남긴 나만의 일기일회(一期一會)들이 나를 붙잡아 세운 것이다. ' 야, 넌 지금 무엇으로 살고 있니?, 모든 걸 버리고 택한 그 누구와는 어떻게 지내니? '

십여년 전 나의 낯설어진 생각과 저 당당한 질문에, 한참동안 쪼그라들기 시작한 나는, 이 늦은 시간이 되어, 바로, 지금의 나에게 되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그런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어디로 간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지난날 법정스님께서 남긴 글을 돌이켜보며 바로 지금의 일기일회(一期一會)를 마친다.

일기일회一期一會 / 법정스님

의 세계에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이 있다.
일생에 단 한번 만나는 인연이란 뜻이다.

개인의 생애에 볼 때도
이 사람과 이 한 때를 갖는 이것이
생애에서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긴다면
순간순간을 뜻깊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몇 번이고 만날 수 있다면
범속해지기 쉽지만, 이것이
처음이면서 마지막 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렇게나 스치고 지나칠 수 없다.

기회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 놓치면 다시 돌이키기 어렵다.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오늘의 나도 어제의 나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이다.
묵은 기간에 갖혀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라.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와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살라.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삶을 당연히 여기지 말라.
일기일회一期一會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번의 만남이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이다.
삶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순간 속에서 살고 순간 속에서 죽으라.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 하지 말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불필요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것은 영혼의 공해와 같다.

얻었다고 좋을 것도 없고,
잃었다고 기죽을 것도 없다.
괴롭고 힘든 일도
그때 그곳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다 한때다.

시련이 우리 앞에 온 것도 다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를 안다면 고통스럽지 않다.
삶을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그러면 행복에도 불행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때그때 감사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은 기약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일기일회一期一會.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다.

지금을 어떻게 사는가가 다음의 나를 결정한다.
삶이 인간에게 주어진 길고 어려운,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수행의 길,
매 순간 우리는 다음 생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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