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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워지기/문장 발효 과학

북 | 리추얼의 종말( 한병철) 중에서

by 청춘만화 2023. 5. 6.

오프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가상 세계를 구축해가는 소셜 서비스와 그 서비스 안에 등장하는 아이템, 공간에 대한 고민들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일부 내용을 공유해봅니다. 

 

*리추얼, ritual"은 의식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무언가를 반복함으로써 얻는 작은 행복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1. 시간 안에서의 리추얼은 공간 안에서의 거처에 해당한다. 리추얼은 시간을 거주 가능하게 만든다. 리추얼은 시간을 집처럼 드나들 수 있게 만든다. 리추얼은 시간에 질서를 부여한다. 시간을 정돈한다. 

리추얼을 집안에 들이기 시간 기술로 묘사한다. "시간 안에서의 리 추얼은 공간 안에서의 집에 해당한다. 흘러가버리는 시간이 우리를 써버리고 한줌의 모래처럼 파괴하는 무언가 가 아니라 우리를 완성하는 무언가로 나타나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말이다.

오늘날 시간은 확고한 짜임새가 없다. 집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흐름이다. 시간은 점 같은 현재의 한낱 연쇄로 와해된다. 시간은 황급히 가버 린다. 아무것도 시간에게 멈춤을 주지 않는다. 황급히 가버리는 시간은 거주 가능하지 않다.

과거 sns라는 개념이 없을 때, 싸이월드가 일상의 멈춤을 제공했다. 다이어리. 공유. 다이어리를 꾸는 도구 중 하나로 미니룸, 캐릭터, BGM이 있었다.( 본디를 비롯한 대부분의 매타버스 또는 sns는 그 반대 flow이다)

 

 

 

2. '삶에서 리추얼은 공간 안에서 사물에 해당한다. 한나 아렌트가 보기에 "인간의 존재로부터의 독립성"을 사물에 제공하는 것은 사물의 지속성(멈춤가능성)이다. 사물들은 "인간의 삶을 안 정화하는 임무를 띠었다. 사물의 객관성이란 "사물이 자 연적인 삶의 급격한 변화에 […] 인간적인 같음 을 제공한다는 것에 있다. 바꿔 말해 "같은 의자와 같은 탁자가 매일 변화하는 사람 앞에 변함없이 친숙한 것들 로서 놓여 있는 것에서 유래하는 안정화하는 동일성에 있다.' 

사물들은 삶을 안정화하는 고정된 말뚝들이다. 리추얼도 똑같은 기능을 한다. 리추얼의 같음을 통하여, 반 복을 통하여, 리추얼은 삶을 지속적이게 (멈춤 가능하게) 만 든다.

리추얼의 틀 안에서 사물은 소비되거나 소모되지 않고 사용된다. 따라서 사물도 늙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사물을 소비할 뿐 아니라 사물에 실린 감정도 소비한다. 

사물은 무한히 소비할 수 없지만, 감정은 무한히 소비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감정은 새롭고 무한 한 소비의 장을 연다. 상품의 감정화, 그리고 감정화와 연결된 미화는 생산 강제 의 지배를 받는다. 감정화와 미화는 소비와 생산을 촉진해야 한다. 그렇게 미적인 것이 경제적인 것에 의해 식민지화된다

새로운 것은 금세 루틴으로 주저앉는다. 새로운 것은 상품이다. 소비되고 다시금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불 러일으킨다. 루틴을 떨쳐내야 한다는 강제가 더 많은 루 틴을 낳는다. 새로운 것에 깃든 시간 구조는 그것을 금세 루틴으로 빛 바래게 한다. 새로운 것은 충족시키는 반복 을 허용하지 않는다. 새로움 강제로서의 생산 강제는 루 틴의 수렁을 더 심화할 따름이다. 루틴에서 공허에서 벗 어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것을, 새로운 자극과 체험을 더 많이 소비한다. 다름 아니라 공허감이 소통과 소비를 촉진한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광고하는 '강렬한(집약적인) 삶'이란 다름 아니라 강렬한 소비다. '강렬한 삶'이라는 환상 앞에서, 끊임없는 소비와 소통보다 더 강렬한 다른 삶꼴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공감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다름 아니라 원자화된 사회에서 요란해진다. 현재의 공 감 호들갑은 일차적으로 경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감 은 효과적인 생산수단으로서 동원된다. 공감은 개인을 감정적으로 물들이고 조종하는 데 기여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단지 노동 시간뿐 아니라 개인 전체가 착취 된다. 여기에서 감정적 관리는 이성적 관리보다 더 효과 적이다. 후자보다 전자가 개인 속으로 더 깊이 침투한다.

오늘날 디지털 소통은 점점 더 공동체 없는 소통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모든 각자를 자기 자 신의 생산자로서 개별화함으로써 공동체 없는 소통을 강 제한다. '생산하다'를 뜻하는 독일어 'produzieren'의 어 원은 '내보이다' 혹은 '보이게 만들다'를 뜻하는 라틴어 '프로두케레producere'다. 같은 어원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produire'는 지금도 '보여주다'를 뜻한다.

'자기를 드러내다'를 뜻한다. 일상적인 독일어 표현 'sich produzieren (자기를 과시하다)도 아마 같은 어원에서 유래 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곳에서 강박적으로 우 리 자신을 드러낸다. 예컨대 소셜미디어에서 그러하다. 사회적 차원은 자기생산 Selbst-Produktion (자기과시)에 완전 히 종속된다. 모든 각자가 더 많이 주목받기 위해 자기를 생산한다. 자기생산의 강제는 공동체의 위기를 초래한다. 오늘날 도처에서 들먹여지는 이른바 '커뮤니티community' 는 공동체의 소멸 단계, 공동체의 상품 형태이자 소비 형 태에 불과하다. 커뮤니티에는 어떤 형태의 상징적 결합 력도 없다.

공동체 없는 소통은 가속된다. 왜냐하면 그 소통은 가 산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리추얼은 서사적narrative 과정이며, 서사적 과정은 가속을 허용하지 않는다. 상징 들은 멈춰 있다stchen still. 반면에 정보는 멈춰 있지 않다. 정보는 돌아다님으로써 존재한다sind. 오늘날 고요Stille는 단지 소통의 멈춤을 의미할 따름이다. 고요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탈산업화 시대에는 기계의 소음이 소 통의 소음에 밀려난다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소통은 더 많은 생산을 기대하게 한다.



 

 

맺음의 리추얼 

그 마을이 보여주는 것은 닫힌 질서다. 그 마을은 거주를 가능하게 만든다. 따 라서 "떠날 필요가 없다. 늙은 야생배나무가 중력을 발 휘하여 사람들을 통합하고 심층적인 결속을 이뤄낸다. 그 마을의 거주자들은 거기에 모여 노래한다. "따뜻한 여 름 밤이면 그 야생배나무 아래에서 낮은 노랫소리가 들 려온다. 마을이 조용히 노래했다. 밤을 부당하게 방해하 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2" 이 장소에서는 소통할 것이 별로 없다. 소통의 소음이 고요를 방해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삶은 개인적 체험들로 이루어지지 않고 [] 깊은 침묵으로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충분히 납득 할 만하다. 개인적 의식을 축복으로 받은 인간은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말하도록 끊임없이 강제당하는 반 면, 근대 이전의 분위기에서는 누구나 모두가 아는 것보 다 훨씬 더 적게 말한다. "25 야생배나무 아래에서 마을은 "리추얼적 관조"에, 리추얼적 침묵에 빠져들고 집단의식 내용"을 승인한다." 맺음 리추얼은 장소를 안정화 한다. 그 리추얼은 디지털화와 전 지구화의 물결 속에서 해체되고 있는 인지적 대응kognitives Mapping을 산출한다.

그 마을의 거주자들은 심층적으로 결속된 상태로 산 다. 지각뿐 아니라 행위도 집단적 형식을 띤다. 그들은 함 께 보고 듣는다. 행위는 특정 주체에 귀속되지 않는다. "마을이 무언가를 행하거나 지각하면, 그 행위나 지각은 한 주체, 한 개인을 갖지 않는다. 바꿔 말해, 행위나 지각 에 참여한 개인들은 집단적 의식에 의해 리추얼적으로 삼 켜지고, 그들의 경험은 그 장소를 대표하는 일반적 이름 에 귀속된다.27 집단적 의식은 소통 없는 공동체를 만들 어낸다.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 Erzählung가 계속 반복되며, 그 이야기는 그 마을의 거주자들에게 세계다. "그들은 이 것저것에 대한 견해가 없다. 대신에 그들은 단 하나의 커 "28 다란 이야기를 중단없이 이어간다. 28 그 마을을 지배하 는 것은 말 없는 합의다. 아무도 개인적 체험과 견해로 그 합의를 교란하지 않는다. 아무도 남들의 이목을 끌려 하 지 않는다. 사람들의 주의는 일차적으로 공동체에 집중 된다. 리추얼적 공동체는 함께 듣기와 함께 속하기의 공 동체, 고요한 일치 안에서 침묵하는 공동체다. 

그 근원적 인 가까움이 사라질 때, 바로 그때 과도한 소통이 발생한다. 소통 없는 공동체가 공동체 없는 소통에 밀려난다.

이야기는 하나의 맺음형식이다. 이야기는 시작과 끝이 있다. 이야기는 맺어진 질서를 묘사한다. 반면에 정보는 서사적이지 않고 가산적이다additiv. 정보들은 하나의 이 야기로, 의미와 정체성을 창출하는 하나의 노래로 함께 맺어지지 zusammenschließen (연합되지 않는다. 정보들은 오 로지 끝없는 소통만 허용한다. 늙은 야생배나무 곁에는 고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것이 이야기되었기 때 문이다. 오늘날에는 소통의 소음이 고요를 몰아낸다

리추얼은 삶에서 본질적 인 이행에 형식을 부여한다. 리추얼들은 맺음형식들이다. 리추얼들이 없으면, 우리는 쭉 미끄러져 간다. 예컨대 우리 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늙지 않는다. 혹은 영영 성숙하지 않는 유아적 소비자로 머무른다. 오늘날 고유시간의 불 연속성은 생산과 소비의 연속성에 밀려난다.

이행 의례, 곧 통과 의례는 삶을 계절들처럼 구조화한 다. 문턱을 넘는 사람은 삶의 한 단계를 끝맺고 새 단계 에 진입한다. 문턱들은 이행지점들로서 공간과 시 간을 율동적으로 만들고 또렷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공 간과 시간을 이야기로 만든다erzahlen, 문턱들은 심층적 인 질서 경험을 가능케 한다. 문턱들은 시간집약적 이행 지점들이다. 문턱들은 오늘날 더 빠르고 중단 없는 소통 과 생산을 위해 철거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간과 시간 의 측면에서 더 빈곤해진다. 우리는 더 많은 공간과 시간 을 생산하려 노력하면서 공간과 시간을 상실한다. 공간과 시간은 언어를 잃고 침묵한다. 문턱은 말한다. 문턱은 변화 시킨다. 문턱 너머에는 다른 것, 이질적인 것이 있다. 문턱의 환상이 없으면, 문턱의 마법이 없으면, 오로지 같음의 지옥 만 남는다. 전 지구화는 문턱과 이행을 가차 없이 철거함 으로써 이루어진다. 정보와 상품은 문턱 없는 세계를 선 호한다. 저항 없는 매끄러움은 정보와 상품의 순환을 가속 한다. 시간집약적 이행지점은 오늘날 파열하여 빠르게 통 과하는 지점이 된다. 계속 이어지는 링크, 끝없는 클릭이 된다.

 

 

리추얼의 종말>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물론 디지털화에 따 른 과도度소통은 우리를 점점 더 많이 연결되게 만들 죠. 그러나 연결된다고 해서 더 많이 결합하고 친근해지 는 것은 아닙니다. 소셜미디어도 에고를 중심에 둠으로 써 사회성을 제거합니다. 디지털 과도소통에도 불구하 고 우리 사회에서 외로움과 고립이 증가하고 있어요. 오 늘날 우리는 우리의 견해, 욕구, 소망, 선호를 소통하라 는 요구,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받 습니다. 누구나 자기를 내보여요 produzieren. 누구나 자기 를 실행해요 performen. 누구나 자아 숭배, 자아 예배에 충 성하죠. 그래서 나는, 리추얼은 소통 없는 공동체를 낳는 반면, 오늘날에는 공동체 없는 소통이 주도권을 쥐고 있 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공동의 축제를 거행하는 일 은 오늘날 갈수록 드물어집니다. 모든 각자가 오로지 자기를 경축해요. 우리는 모든 쾌락이 소망의 충족에서 나 온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소비사 회만 소망의 충족을 방향 설정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축 제에서 관건은 나의 소망이 아니에요. 공동의 놀이에서 나는 내 소망을 충족시키려 하지 않아요. 오히려 나는 '규 칙을 향한 열정 Regelleidenschaft'에 몰두하죠. 나의 주장은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우리가 공동의 행위와 놀이의 새로운 형태들을 발 명해야 한다는 것을 옹호합니다. 자아의 저편, 소망의 저 편, 소비의 저편에서 이루어지며 공동체를 조성하는 새 로운 형태의 공동 행위들과 놀이들을 발명해야 해요. 이 책은 미래 사회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공동체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망각했어요. 우리는 자유도 개인적 관점에서 정의하죠. 독일어 "Freiheit"(자유)는 원래 "친구 들 곁에 있음 bei Freunden sein"을 뜻합니다. "Freiheit"와 "Freund" (친구)는 어원이 같아요. 자유는 성공적인 관계를 연상시켜요. 따라서 우리는 자유도 공동체에 기초해서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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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의 종말

꾸준하게 오늘의 세계에 대해 예리한 분석과 비타협적인 비판을 선보여온 철학자 한병철의 신작. ‘리추얼’을 열쇳말 삼아, 우리 사회가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진단하고 더 좋은 삶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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