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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워지기/문장 발효 과학

만가지 행동 (김형경 심리 훈습 에세이) 1/3

by 청춘만화 2012. 8. 26.

만가지 행동 (김형경 심리 훈습 에세이)

변찬우



만가지 행동이라는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틈틈히 읽어가며 접어두고 밑줄 그어 두었던 내용을 정리하여 담는다. 


요즘 내게 너무나 필요한 구절이기에.. 

스스로를 위한 가르침 대로 삼아, 자주 찾아 읽을 요량이다.


표시해 두었던 내용이 다소 많아.. 아니, 스스로 고쳐야할 점이 많아. 

두번으로 나눠 적으려 한다. 물론 그 두 번의 블로깅이 얼마나 빠른 시간에 쓰여질 지 모르지만,

여튼, 이렇게 한번 더 변화를 위한 시도.라는 걸 해 보려한다.


책의 말을 빌리자면,

자동강박반복추구로 인해 많은 구절을 표시하고 기억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한 접고 쓰고 했던 많은 부분을 

정리해가면서 내 안의 이드와 자아를 구분하고 그 자아가 스스로의 이드를 잘 다독일 수 있게 하고자 함이다.






- 하던 일 하지 않기

생은 다른 곳에(변화와 훈습)

정신분석적 통찰은 
한 사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원망,감사,경이,존중 등의 단계로 발전시킨다.

통찰은 심리 내면에서 자리 잡고 있던 (나도 몰랐던)왜곡된 인식,미숙한 관념.낡은 생존법에 대한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자잘한 화산폭팔과 같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대표적인 트라우마
어린 나를 외가로 보낸것 = "엄마가 나를 버렸다"
18개월짜리 '내면아이"의 인지 왜곡
-> 자기분노를 엄마에게 떠넘겨 엄마를 가해자로 만드는 심리작용


훈습은 
(프로이드 "끝날 수 있는 분석,끝낼 수 없는 분석")
우리가 외면해 온 것을 되찾는 작업이며, 부정했던 것을 온전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또한 과거에 묻힐 뻔했던 것을 현재가 되게 하여 우리 자신의 것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마크 엡스타인"붓다의 심리학")
훈습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관점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이 아닌 정서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면 단기간의 성취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서에 집착하거나 혹은 회피하려 함으로써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하는 바로 그 감정에 매인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먼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온다. 이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바뀌고, 그 다음에야 새로운 정체성이 만들어 졌다.

훈습 과정을 거치면서야 '다르게 살고 싶다'고 꿈꿀 때마다 진심으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자기 실현 욕구 였다. 낡은 방식이 몸에 맞지 않을 때,오래된 습관이 변화한 역할에 적합하지 않을 때마다 다르게 살고 싶어 했다.
생에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싶은 욕구,자유롭고 충만하게 살고 싶은 욕구,파편화시켜 둔 내면을 통합하여 진정한 나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욕구였다.
변화란 삶의 외형이나 행동 방식을 바꿔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였다. 인식,관점,사고의 틀이 바뀌는 지점에서 성취되는 것임을 훈습 과정에서 체험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저 마음이 내 마음이다.(투사,외재화 하지 않기)


훈습 시기에는 생각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예전에는 어떤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을 보면 '저 사람 이기적이야'라고 판단한 후 문제를 쉽게 그의 이기심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저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판단하면서 불편해하는 내 마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문제를 나의 것으로 끌어안고 해결책도 내면에서 찾는 첫 단계였다.
'이 상황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내 마음은 무엇이지?'
'저 사람의 공격성이 불편한 내 마음은 무엇이지?'
이런식으로 관점을 바꿔보면 상대에게서 보이는 감정이나 내면 성향이 나의 내면에서 발견되었다.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격한 반응이 올라올 때도 그것은 '나의 분노'였고, 정당하게 비판한다고 느꼈건 목소리 안에도 '나의 시기심'이 있었다.

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불편은 나의 모습이다. 상대방에게 힘을 행사하고 통제함으로써 가악적 쾌감을 느끼는 행동 같은 경우도 그렇다.

일단,저절로 남의 탓을 하기 전에 "나도 그런데 뭐?" 또는 "내가 더 심하지" 
"저 마음이 내 마음이지"라는 생각을 지니도록 한다.
또한 '내가 화났다'거나 '내가 불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내면에서 분노가 솟구쳤다."불안감이 밀려왔다."라고 표현한다.

외재화는 사물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이분법적 논리와, 그 중에서도 '내가 옳다'고 믿는 나르시즘 위에 형성된 감정과 같다. 
마치 걸음마 하던 아기가 넘어지면 방바닥을 치며 "때찌!"하는 태도와 같이 어떤 문제도 스스로 해결할 힘이 없었던 유아기 생존법의 잔재이기도 하다.

"꿈에서 벗어나야 꿈이 보인다."는 말처럼, 투사나 외재화 방식을 벗어나고서야 그동안 10초도 걸리지 않을 일을 가지고.. 김치 국물이나 젖은 수건에게 화를 내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의 잘못은 그의 몫이고 나의 해결책은 나의 몫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상대방이 악업을 지으면서 까지 내 업장을 녹여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기심이 가라앉는 데고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 

우선 나의 시기심이 현실적 근거가 없는, 유아기의 '페니스 엔비'에서 비롯되어 무의식 속에 억압된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첫 단계, 내게 결핍된 것이 있는 게 아니라, 내게만 주어진 특별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였다.



-경직성은 시체의 특성이다.(방어,통제하지 않기)

그가 말하는 정보들을 수첩에 빼곡히 적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가이드가 마음에 들었던 나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 거지?'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지식화 방어기제였다. 
사자성어 처럼 보이는 '충탐해판'은 충고,탐색,해석,판단의 앞 글자를 모은 단어는 한데 묶어 놓고 보면 방어의 언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충고는 자기 생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을 남에게 투사하는 것이고,
탐색은 상대에게 존재할지도 모르는 위험 요소를 경계하는 일이었다.
해석은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타인에게 덧씌우는 일이고,
판단은 제멋대로 남들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행위였다.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할 권리가 없지만,일상적으로 늘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모든 행위의 배경에는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자동강박반복추구'는 일 중독 현상이었다.

일에 몰두하는 동안은 마음이 편안하지만 마감을 끝낸 후나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이 불편했다. 성실하게 일해야만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느낀 것 같고,시간을 아껴서 사용하고 싶어 했다. 정보에 대해서도 유사한 성향이 있었다. 그것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태도라 믿으며 자료를 탐독했고 자리를 비울 때는 너무 많이 단절되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기계 문명에 관해서도 나는 얼리어답터였다. 첨단 문명들을 잘 활용할수록 유능한 사람이고 유익한 일이라 믿었다.하지만 결국 그런 행동이 무의식적 경쟁심,불안감,소외감 등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자동강박반복추구는 이드의 충동이어서 자아가 계속 통제해 주어야 한다고 프로이드는 제안한다. 자아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이드에게 끌려다니면 충동적이 되며,자아가 초자아의 눈치를 보면서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충동적 행위와 죄책감의 반복은 모든 중독행위의 속성이며 벗어나기 힘든 마음의 감옥이라고 한다.

(문득, 마음의 갈등이 느껴지는 순간. 그 초자아를 인지하는 시점이 충동여부를 판단해준다.) 

열심히 살지 않기'를 중얼거리며 훈습 시간을 보낼 때, 욕동을 지켜보는 일이 마치 철로 변에서 노는 아기를 지켜보는 기분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마음이 허전하거나 불편하면 강박 추동이고, 천천히 살아도 마음이 편안하고 자재하면 성실함이 아닐까 싶다. "성실하게 살되,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분리'는 


유아가 엄마와 한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처음 획득하는 심리하고 한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가족 등으로 부터 심리적 분리를 이루어야 하며, 내면에 만들어 가진 그에 대한 이미지도 해체해야 한다. 세계의 모든 신화가, 그 주인공이 자신의 공동체를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거절당하는 이의 자기애적 분노를 감수하기

낡은 행동 방식을 수정하면서 유아적 의존,침범 관계로부터 분리될 때 처음에는 소외감 같은 것이 없지 않았다. 거정하는 일이 불편했고 내 입장을 해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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