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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가지 행동 (김형경 심리 훈습 에세이) 2/3

by 청춘만화 2012. 8. 27.

만가지 행동 (김형경 심리 훈습 에세이) 2/3


변찬우




아무래도 접어둔 집착이 너무 많아..두번의 포스팅으로는 어림도 없을 듯하다..

대략 다섯회는 거치지 않을까 한다.. 우선 담아두고 하나둘 지워가야겠다..






-마음속 권위자를 보내며(인정 지지 구하지 않기)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후 가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후배들에게는 내가 잘할 것 같은 일, 좋아하는 일이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고.
종사자들에게는 문학이라는 틀을 가질 때 인간이나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라고.

식사를 끝내고 오는 길에 문득, 소름 끼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내가 글쓰기를 통해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있고, 그에 부합하는 행위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이 세상 한 귀퉁이에 존재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고 느끼는 듯했다. 이어서 알아차린 사실은 내가 쓴 글을 통해 권위를 가진 자의 인정과 지지를 받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빨리 등단해서 황순원 선생님을 영광되게 해 드리고 싶다."
우리 학번은 황순원 선생님께 소설을 배운 마지막 학생이었다.
미숙한 시절의 생각에 어떤 무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는지 알아차리니 혼자서도 절로 낯이 붉어졌다. 선생님의 명예는 나의 등단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 선생님께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그런 언어로 포장했다는 사실이 명료하게 보였다.

글쓰기는 인정받고 지지받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나의 삶의 일부이며, 자기실현 과정이며,나의 경험을 독자와 나누는 방법이었다. 어떻게 독자들과 잘 소통할 것인가에만 마음을 쓰면 되었다.
나의 존재를 타인에게 증명하거나 허락받을 이유가 없으며, 나의 삶을 누군가에게 승인받을 필요가 없음을 마음 깊은 곳까지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마추어가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일한다면 프로페셔널은 자기에게 유익하고 즐거운 일을 한다.아마추어가 타인과 경쟁한다면 프로페셔널은 오직 자신과 경쟁한다.아마추어가 끝까지 가 보자는 마음으로 덤빈다면 프로페셔널은 언제든지 그 일에서 물러설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일한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내면에서 느끼는 결핍감의 유무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사랑의 비렁뱅이를 떠나보내며(자율성과 자기 사용)

그녀는 음식을 씹을 때마다 약한 비위를 이겨 내고 있었고, 자기 한계를 돌파하면서 주도적으로 삶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반면 나는 비위가 약하다는 사실에 묶여 있었고,비린 녹두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음식에 대한 편견과 자기 한계에 묶여 있었다.

자기 사용은 정신분석 용어 '엄마 사용'에 대응하는 말이다. 아이는 원래 엄마를 착취적으로 사용한다. 태내에서부터, 태어난 후에도 오래도록 아이는 엄마를 숙주처럼 사용한다. 아이가 얼마나 엄마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아이의 정신 구조가 다르게 편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엄마를 사용할 수 없는 아기는 자기 자신을 사용하게 되는데, 손가락을 빨거나 거울 앞에 서서 몸을 흔들거나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다. (셀카나 마스터베이션-)

나는 제법 자율적으로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아기가 자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의존성을 벗어 낸 후 성인의 방식으로 다시 자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먼저 스스로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이 가득 한 사람이 되어 넘치는 사랑을 타인과 나누는 것, 그것이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존성이 남아 있던 시기까지 내가 했던 사랑은 모두 사랑을 구걸하는 일이었다. 

"사랑을 구걸하지말고 사랑을 하세요."
"시도해 보기 전까지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신화의 주인공들은 오래전부터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일러 주고 있다.스스로 비전을 세우고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면, 그 자리가 모두 진리이다."(임제록)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이해하는 어른의 의미였다.




-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모름과 혼돈에 머물기)

'내가 옳다'거나 '내가 안다'는 생각이 어떻게 위험한 것인지를 보는 듯했다.

편견이 마음의 벽이라면 신념은 마음의 감옥이 아닐까 싶었다. 훈습과정에서 '모른다'는 사실이 몸에 배어 편안해지자 '내가 옳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내가 옳다는 생각이 없어지니 절로 다른사람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게 되었다.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세상사에 관심을 쏟으며 어떻게 생을 낭비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부족하고 미흡한 점 드러내기'는 페르소나와 이상화시킨 자기 이미지를 해체하는 일,나르시즘과 지식화 방어기제를 벗는 일이었다.
'냉혹한 경쟁 사회에서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곧 경쟁자에게 빌미를 주는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떠오르면 그것 역시 방어의 언어임을 확인하곤 했다.

그리고 '예전의 실수나 부족함을 내버려 두기'
깔끔하고 아름답게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나르시즘이나 불안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모름과 혼동 상태에 머물 때에야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신비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경에서 말하는 '반야 지혜'와 성경의 '위에서 오는 지혜'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인간이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 가진 지식과 다르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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