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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워지기/문장 발효 과학

북 | 정보의 지배-한병철 (feat.집단 극단화 에 대한 소고)

by 청춘만화 2023. 3. 31.



여느 때처럼.ㅡ.,ㅡ ..  스터디(UX심리학) 발표준비를 벼락치기하고 있다. 이번 발표 챕터 중 하나가 '집단 극단화'이다.
머릿 속이 벼락치기 걱정때문인지 ,,, 한병철님 신간?을  읽다가.. 불련듯 '아!'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들게 한 책 일부의 내용과 쓰잘데기없는 ㅋㅋTMI 생각을 퇴근길 지하철에서 몇자 남겨본다..

데이터주의자들에 따르면, 공론장의 파열뿐 아니라 어마 어마한 정보량과 정보사회의 복잡성 급상승도 소통행위 의 이념을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만든다. "21세기 사회 는 너무 복잡하고, 이 복잡성은 정보기술 덕분에 그 실상 대로 너무나 명확하게 가시화된다. [...] 처리해야 할 정보 의 양은 개인들의 '제한된 합리성'을 능가할 만큼 방대해 졌다. 그리하여 일상에서 인간 간 소통은, 아렌트와 하버 마스가 상정한 전제들이 현실에서 충족되기 어려울 정도 로 심하게 위축되었다. [・・・] 오늘날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하나의 공통된 토론 배경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없다. 그런 배경이 존재한다면 토론을 시작할 수 있을 테지만 말 이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동일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이 토론에 참여한다는 전제조차 더는 채택할 수 없다. 아렌트와 하버마스가 이상으로 떠받든 공론장은 애당초 전혀 실현되지 않는다."

(중략)

오늘날 소통행위가 위기에 처한 원인을 메타 수준에서 찾으면, 타인이 사라져가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타인 의 사라짐은 담론의 종말을 뜻한다. 그 사라짐은 의견에서 소통적 합리성을 앗아간다. 타인의 추방은 자기 고유 의 견해를 자신에게 주입하려는 자기선전적 강박을 강 화한다. 이 자기 교설 주입은 자폐적인 정보 거품방울을 생산하고, 그 거품방울은 소통행위를 어렵게 만든다. 자 기 선전의 강박이 커질수록, 담론 공간은 점점 더 반향실 Echokammer들로 대체된다. 반향실 안에서 나는 무엇보다 도나 자신의 말을 듣는다.

담론은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정체성을 분리하는 것을 전제한다. 이 담론적 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전 투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고수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정체성이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그들을 그들 고유의 신념으로부터 떼어내려는 시도는 실 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누구의 말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도무지 경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담론은 경청의 실행 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일차적으로 경청의 위기다.

엘리 패리서에 따르면, 알고리즘을 통한 연결망의 개 인화가 공적 공간을 파괴한다. '차세대 인터넷 필터들 은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듯한지- 당신이 과거에 인터넷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혹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 을 좋아했는지 살펴보고 거기에 맞게 여러 결론을 도출한다. 예측 기계들은 끊임없이 당신의 성격에 관한 이 론을 구상하고 개선하면서 당신이 다음번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원할지 예측한다. 이 기계들의 협력으로 우리 각 자에 대응하는 더없이 고유한 정보 우주가-나는 이 우주를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부른다- 창조되고 우리가 생각과 정보에 도달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내가 인터넷 안에서 돌아다니는 시간이 길수록, 나의 필터 버블은 내가 좋아하고 나의 신념을 강화하는 정 보들로 더 많이 채워진다. 나는 세계에 관한 나의 견해 와 어긋나지 않는 견해들만 보게 된다. 다른 정보들은 걸 러진다. 그렇게 필터 버블은 나를 영구적인 "나고리 Ich- Schleife" 안에 빠뜨린다.

엘리 패리서는 연결망의 개인화가 민주주의 자체를 위 협한다고 본다. 패리서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토대 및 존 재 이유는 개인 고유의 즉각적 이해관계 바깥에 놓인 사 회적 주제들이다. 그런데 인터넷의 개인화는 우리의 생 활세계와 경험 범위가 점점 더 작아지고 제한되게 만든 다. 그리하여 그 개인화는 민주주의적 공론장의 파열을 일으킨다. "필터 버블 안에서 공적 공간-공통의 문제들 이 인식되고 다뤄지는 구역은 한마디로 더 하찮게 된다.

필터 버블 이론은 정보사회에서 경험 범위의 축소를 오로지 알고리즘을 통한 연결망의 개인화 탓으로 돌린다 는 점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녔다. 패리서의 견해와 달 리, 공론장의 파열은 순수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검색 결 과와 뉴스피드의 개인화는 그 파열 과정에서 미미한 역할만 담당한다. 자기 교설 주입과자기 선전은 이미 오프 라인에서도 일어난다.

사회의 원자화와 나르시시스화가 심해짐에 따라 우리 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또한 공감을 상실한 다. 오늘날 모든 각자는 자아를 숭배한다. 누구나 자기를 공연하고 생산한다. 알고리즘을 통한 망의 개인화가 아 니라 타인의 사라짐이 경청 능력의 부재가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원인이다.

소통과 이해를 위해 애쓰는 담론적 상황은 전제와 맥 락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상황은 문화적으로 자명한 것들, 혹은 사회적으로 습득한 관행들로 이루어 진 구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구역이 소통행위를 선先 반성적으로 규정한다.

정보의 지배(김영사, 한병철 저) 중에서



사실상 멀티버스는 바로 지금이다.
모두 같은 시간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서로 공통된 배경을 찾기 어렵다. 같은 학교, 같은 교실, 같은 회사 심지어 같은 집에 있지만 공유할만한 공통의 배경이 없다.
그리고 점차 줄어들고 있다.
MZ라고 묶어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마저 실상은 M과 Z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각각은 저마다 스스로 이방인임을 시인한다. 그 시인으로 나와 타자를 구분하고 일상에서의 관계에 회의감을 갖게 된다.

단지 나' 개인의 태도 각각이 쏟아져나와 오늘의 학교, 회사, 출퇴근 길 지하철안, 광화문 광장 저마다의 멀티버스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린 지구라는 광대한 행성에 살지만 손에 잡히는-마치, 우주에 비하면 양자와 같은- 스마트폰 위에 살고 있다.
원거리에서의 만남은 말에서 차에서 비행기로, 원격으로, 매타버스로 대륙까지 초월할 수 있지만 눈앞에 지나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 조차 불가능한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드레곤볼에 순간이동에 그림처럼 사람이 이동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을 통해 가능해졌듯
어벤져스의 멀티버스를 또한 이미 형태만 다르지 우린 멀티버스와 같은 거리로 살아가고 있는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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