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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워지기/문장 발효 과학

정보의 지배 중에서

by 청춘만화 2023. 4. 11.

오늘날 소통행위가 위기에 처한 원인을 메타 수준에 서 찾으면, 타인이 사라져가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타인 의 사라짐은 담론의 종말을 뜻한다. 그 사라짐은 의견에 서 소통적 합리성을 앗아간다. 타인의 추방은 자기 고유 의 견해를 자신에게 주입하려는 자기선전적 강박을 강 화한다. 이 자기 교설 주입은 자폐적인 정보 거품방울을 생산하고, 그 거품방울은 소통행위를 어렵게 만든다. 자 기 선전의 강박이 커질수록, 담론 공간은 점점 더 반향실 Echokammer들로 대체된다. 반향실 안에서 나는 무엇보다 도나 자신의 말을 듣는다.

담론은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정체성을 분리하는 것을 전제한다. 이 담론적 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전 투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고수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정체성이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그들을 그들 고유의 신념으로부터 떼어내려는 시도는 실 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누구의 말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도무지 경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담론은 경청의 실행 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일차적으로 경청의 위기다.

엘리 패리서에 따르면, 알고리즘을 통한 연결망의 개 인화가 공적 공간을 파괴한다. '차세대 인터넷 필터들 은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듯한지- 당신이 과거에 인 터넷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혹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 을 좋아했는지 살펴보고 거기에 맞게 여러 결론을 도 출한다. 예측 기계들은 끊임없이 당신의 성격에 관한 이 론을 구상하고 개선하면서 당신이 다음번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원할지 예측한다. 이 기계들의 협력으로 우리 각 자에 대응하는 더없이 고유한 정보 우주가-나는 이 우주를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부른다- 창조되고 우리가 생각과 정보에 도달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내가 인터넷 안에서 돌아다니는 시간이 길수록, 나의 필터 버블은 내가 좋아하고 나의 신념을 강화하는 정 보들로 더 많이 채워진다. 나는 세계에 관한 나의 견해 와 어긋나지 않는 견해들만 보게 된다. 다른 정보들은 걸 러진다. 그렇게 필터 버블은 나를 영구적인 "나고리 Ich- Schleife" 안에 빠뜨린다.

엘리 패리서는 연결망의 개인화가 민주주의 자체를 위 협한다고 본다. 패리서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토대 및 존 재 이유는 개인 고유의 즉각적 이해관계 바깥에 놓인 사 회적 주제들이다. 그런데 인터넷의 개인화는 우리의 생 활세계와 경험 범위가 점점 더 작아지고 제한되게 만든 다. 그리하여 그 개인화는 민주주의적 공론장의 파열을 일으킨다. "필터 버블 안에서 공적 공간-공통의 문제들 이 인식되고 다뤄지는 구역은 한마디로 더 하찮게 된다.

필터 버블 이론은 정보사회에서 경험 범위의 축소를 오로지 알고리즘을 통한 연결망의 개인화 탓으로 돌린다 는 점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지녔다. 패리서의 견해와 달 리, 공론장의 파열은 순수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검색 결 과와 뉴스피드의 개인화는 그 파열 과정에서 미미한 역할만 담당한다. 자기 교설 주입과자기 선전은 이미 오프 라인에서도 일어난다.

사회의 원자화와 나르시시스화가 심해짐에 따라 우리 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또한 공감을 상실한 다. 오늘날 모든 각자는 자아를 숭배한다. 누구나 자기를 공연하고 생산한다. 알고리즘을 통한 망의 개인화가 아 니라 타인의 사라짐이 경청 능력의 부재가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원인이다.

소통과 이해를 위해 애쓰는 담론적 상황은 전제와 맥 락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상황은 문화적으로 자명한 것들, 혹은 사회적으로 습득한 관행들로 이루어 진 구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구역이 소통행위를 선先 반성적으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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