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본다.
독서모임 덕분에 알게 된, 고전 '이방인'을 읽고, 관련된(?) 유사 추천도서 '구토'를 읽던 중.. 비슷한 억양의 두 책을 읽는 과정에서 첫번째는 무난히 읽었으나 두번째 책은 계속해서 같은 자리만 맴돌고 다음 페이지로 내용이 이어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몇주가 흘렀을까.. 우연치 않게 코엑스 국제 도서전에서 몇권의 책을 발견했다. 얇은 책, 그 두께만큼 무게도 출판사 이름도 가벼웠지만, 제목과 내용만큼은 나를 흔들어놓기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모임의 발제를 맏아 진행한 '만가지 행동'의 저자의 사유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이 나와 너무 비슷하다는 점에서 느꼈던 감정과 그 후 읽게 된 이방인과 구토라는 책의 내용을 통해, 내 안에서 일러나고 있는 그 생각이라는 것의 비중이 일상에서 점차 더 강해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인류가 생각을 왜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을 비롯해 개인이 왜 생각에 빠지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한 그동한 개인적으로 조직에서 경험했던 또는 관계에서 느꼈던 비슷한 경험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매우 도움이 되지않았던가 싶다. 또한 번역서가 아닌 우리 나라 분이 저자라는 점에서 어려운 내용임에도 이해가 쉬었으며 참고 서적에 대한 추가 설명 또한 세심하게 기재되어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두가지 색사의 포스트잇을 사용했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 다른 하나는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특허/R&D내용과 관련된 인공지능 기술에 접목/활용할 수 있는 부분.
그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에 대한 내용을 옮겨 적기로 한다.
생각, 의식의 소음, 김종갑(마이크로인문학 2014)
(22.p)
독나무_윌리엄 블레이크
친구가 화가 났었네
화가 났다고 말하자 화가 풀렸네
원수에게 화가 났었네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더니 화가 자라기 시작했네
두려움에 떨며 나는 화에 물을 주었네
밤이나 아침이나 내 눈물의 물을 주었네
가짜 미소와 달콤한 거짓으로
햇빛을 비춰주었네
그랬도니 밤이고 낮이고 자라나
마침내 빛나는 사과를 보았네
내 원수는 빛나는 사과를 보았네
그리고 나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야음을 틈타
그는 몰래 내 정원으로 들어왔네
아침에 원수가 나무 밑에 죽어 있었네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33.p)
전기가 선을 따라 흐르듯이 생각은 연상 체계를 따라서 움직인다.
시퍼렇게 독이 오른 생각은 독한 이미지와 독한 기억의 뿌리를 건드리고, 감자처럼 수많은 유해한 이미지들이 줄줄이 딸려서 올라오게 만든다.
당사자는 과거의 굴욕과 복수를 잊지않기 위해 와신상담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그러한 생각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복수의 무능력에 대한 자기변명이다. 그의 생각은 귀가 멀고 눈이 먼 생각, 생각을 위한 생각, 생각의 악순환, 생각의 자기증식이다. 그는 생각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된다. 그리고 눈덩이의 무게에 가지가 꺽이는 나무처럼 생각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사과나무 밑에 대자로 쓰러지는 것이다.
(38.p)
일단 생각의 울타리에 갇히면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화두를 풀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화두를 잊어도 좋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왜 갈증을 생각하는가? 그냥 물을 마시면 되지않는가?
(62.p)
그날은 걷기에 집까지 걸어갔다. 2시간 내내 이러한 생각을 머릿속에 굴리고 있었다.
이 간단한 사건에는 내가 말했던 세상이라는 연극의 주요한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첫째, 나는 현실에서 당했던 모욕과 상처를 그것에 대한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려고 하였다. 현실에서의 무능을 생각의 능력으로 보충하려 한 것이다. 둘때로, 나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며 당연히 내 뜻대로 될 수 없는 회의에서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통제하는 감독처럼, 전지전능한 신처럼 나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다른 일에 몰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의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또 그와 같은 몰입에서 충분히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동료의 공격에 재치있게 반응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순발력이 있어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셋째, 회의를 포함해서 모든 것이 나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민감한 이해관계가 얽힌 회의에서는 모욕적인 언사가 나오기도 하고, 언성을 높이며 멱살을 잡을 수도 있다. 내가 기분 좋으라고 회의를 하며, 내가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동료 교수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래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넷째, 당시의 회의 상황에서 "김 선생이 뭐 아는게 있어요?"라는 말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아무도 그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요한 플롯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사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와 관련된 것이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74.p)
마음이나 생각이라는 것은 주어진 환경의 변화에 인류가 적응하기 위해서 발당시킨 생존의 부산물이다. "뇌는 자기 자신을 이해라도록 조립된 게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조립된 하나의 기계"(에드워드 윌슨,[통섭],184.p)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맹목적 생존 본능으로 충분했던 기능이 나중에는 욕망과 의식, 의지, 사유로 의식화되고 메타화되는 것이다. 내가 배고프다면 그 사실을 의식하는 것이 욕망이다. 짝짓기가 본능이라면 더 좋은 조건의 짝짓기를 원하는 것이 욕망이며, 그러한 욕망을 따르거나 거부하는 것이 의지이고, 욕망과 의지의 작용에 대한 의식이 생각이다.
(76.p)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그것도 아름답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 생각을 한다. 침팬치의 예를 들어 말했듯이 가장 중요한 생각의 기능은 재현(representation) 능력에 있다. 구멍 속의 개미를 잡기 위해 닿지도 않는 손을 계속 뻗는 대신에 그러고 있는 자기 자신과 상황을 의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으로부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고서 바라보는 능력이 생각이다. 이 단계에서도 생각은 생존과 불가분의 관계로 접어들게 된다. 생각이하는 도구로 먹이를 구하는 대신에 '생각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율성이 심화되면 생각은 예술을 위한 예술처럼 생존의 기능으로부터 벗어나 생각을 위한 생각이 된다. "진화의 역사는 처음에는 어떤 기능을 위해서 선택되지만 점차 발전해서 결국에는 다른 기능을 수행하도록 선택되는 돌연변이의 부산물의 연속이다"(제레드 다이아몬드.[어제까지의 세계],491.p)
(113.p)
아는 것은 지각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것도 물론 지각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을 들으며 베토벤의 소나타라고 생각하는 순간, 혹은 처음 만나는 여자를 보고 첫사랑을 떠올리는 겨우처럼, 구체적이어야 할 지각 경험이 그러한 음악의 지식으로 대체되고, 음익이 울리는 현재의 공간이 과거의 기억과 느낌으로 채워질 수 있다. '나는 지각한다'에서 지각이 순수한 현재를 향한다면 '나는 생각한다'에서 생각은 지금 여기의 현재가 아니라 추상이나 과거, 미래를 향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듣고 있는 음악도 생각의 대상이 되면 '들었던 음악'이라는 과거형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현재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지각해야 할 것을 생각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월광소나타'를 생각으로 듣고, 나무와 장미도 생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무와 장미라는 개념은 보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이 아니라 추상명사이다. 한번도 장미나 국화를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장미와 국화의 차이를 금방 알 수가 있으며, 그것의 사전적 정의를 내릴 수가 있다. 정원에서 직접 장미를 기르는 사람보다 장미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각없는 지식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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