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
이번 포스팅은 굳이 이 책을 이렇게 잘게 쪼개고, 순서를 바꾸고, 정작 중요한 생각에 관한 생각 책에 대한 발표 자료를 만들기도 전에 이 책을 읽으며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포스팅으로 남기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스터디를 통해 다양한 서적과 저자, 그리고 전문가 사이트를 통해 리서치한 결과 심리학에 대한 키워드 매우 많고 지극히 유사한 해석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이 수십? 몇 백가지의 키워드들은 이미 수 십년도 더 지난 키워들이라는 점이 의야했다. 그리고 심리학 초기? 만들어진 키워드들은 성경의 원서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단지 달라지는 것은 새로운 세대에 따른 재해석뿐이다. 그 이유는 계속해서 what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의 내용은 유명 저자들이 그 시대 사소한 일상 속에서 어떤 키워드들을 만들었고 어떻게 논쟁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스토리텔링? 전기? 일종의 에세이 형태로 전개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얼마 전 작고하신 대니얼 카너먼에 대한 내용이었다.
1.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책이 출간된 배경
👉 2. '생각에 관한 생각' 책의 저자 대니에 대해
3. '전망 이론' 공동 연구자 아모스에 대해
4. 공동 연구, 냉정과 열정 사이
5. 그 사 람- 나를 떠 나 도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이스라엘 출신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이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학문적인 업적은 인지 심리학, 판단과 의사결정(*전망이론, 2002 노벨 경제학상), 행동경제학, 행복심리학이다. 아모스 트버스키 등 다른 학자들과 함께 발견법 및 편견으로부터 기인하는 보편적 인적 오류 요인에 대한 인지적인 연구의 토대를 세웠으며 전망이론을 정립했다. 이러한 전망이론의 성과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는 프린스턴 대학 SPIA(이전 명칭; 우드로 윌슨 스쿨)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미지, 글 - 위키백과)
대니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에 대해 추상적인 관심을 보였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할까?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행동할까? 그가 사람들을 직접 만날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학교는 다녔지만 선생님이나 친구들과의 사적인 접촉은 피했다. 그래서 친구가 없었다. 사람들을 알고 지내기만 해도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흥미로운 행동을 많이 목격했다. 그는 선생님도, 술집 주인도,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57
전쟁 중
독일인들이 프랑스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자, 대니와 그의 어머니는 자유로운 몸으로 파리를 돌아 다니며 예전에 살던 집과 재산 중에 남은 게 있는지 찾아보았다. 대니는 '내 생각에 관한 기록 What I Wite of What I Think'이라고 제목을 붙인 노트를 가지고 다녔다("나는 견딜 수 없었던 게 분명해"). 파리에 있을 때 그는 누나의 교과서에서 파스칼의 글을 읽고 영감을 받아 노트에 글을 남겼다.
당시에 독일은 프랑스를 탈환하려고 마지막 반격을 시도했고, 대니와 어머니는 그 시도가 행여 성공할까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대니는 글을 쓰면서,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그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며 "신앙은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그럴 듯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말을 덧붙였다. "바로 그거다! 성 당과 오르간은 바로 그런 느낌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장치다." 그는 더 이상 하느님을 기도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훗날 그는 삶을 돌아보면서 어린 시절의 허세를 기억했고, 그 허세가 자랑스러우면서 동시에 당혹스러웠다. 그는 아이답지 않은 자신의 글쓰기가 "머리만 있고 쓸모 있는 몸은 없는 유대인이라는 인식,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절대 어울리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의 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군에 징집된다. 하지만 대니는 지적 재능을 인정받아 곧장 대학에 진학해 심리학 학위를 딸 수 있었다.
전쟁 막바지
대니는 새 신분을 주겠다는 이스라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소속 지역을 직접 정하는 쪽을 택했다. 그 신분이 어떤 것인지는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웠다. 대니부터가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특정 지역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가 마음을 붙이는 대상은 느슨하고 일시적인 듯했다.
당시 아리엘 긴즈버그와 사귀었고 이후 그와 곧 결혼하는 루스 긴즈버그는 "대니는 책임을 떠맡지 않겠다고 아주 일찌감치 결심했어요. 제가 느끼기에, 대니 내면에는 자신의 뿌리 없음을 합리화해야 할 필요성이 늘 존재하는 것 같았어요. 뿌리가 필요 없는 사람, 어쩌다 보니 삶이 이렇게 되었지만 달리 전개 되었을 수도 있었다라는 식의, 삶을 일련의 우연으로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죠. 신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거예요."
소속 지역과 민족에 굶주린 사람들이 사는 땅에서 그런 것이 절실하지 않은 대니의 성향은 유난히 두드러졌다
그에게 있어, 인간에 대한 질문은 그 어떤 다른 질문들보다 흥미로웠다. "심리학에 대한 관심은 내가 철학을 하는 방식이었지. 사람들은 특히 나는, 왜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이 질문을 이해하면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거든. 이때는 이미 하느님의 존재 여부도 내 관심사에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왜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믿는 지는 내게 아주 흥미로운 주제였어. 나는 옳고 그름에는 큰 관심이 없 었지만, 분노에는 관심이 아주 많았어.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심리학자 가 아니고 뭐겠어!"
당시 심리학
당시 심리학은 정신분석가, 행동주의 심리학자, 게슈탈트 심리학자와 같이 '심리학'이라는 간판이 붙인 다양한 전문가들 집단들이 가득지만, 누구도 상대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심리학은 물리학과 달랐고, 심지어 경제학과도 달랐다. 심리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설득력 있는 단 하나의 이론도 없고 합의된 토론 규칙도 없었다.
학파 1. 행동주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 관찰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것을 연구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과학적으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은, 그리고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것은, 생물체의 행동 방식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학파는 '행동주의 Behaviorism'라 불리는 학파였다. 스키너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미 공군에게서 비둘기를 훈련시켜 폭탄을 유도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스키너는 스크린에 표적이 나타나면 비 둘기가 그 표적을 정확히 쪼도록 가르친 뒤에 성공하면 보상으로 먹 이를 주었다(비둘기는 주변에서 대공 포탄이 터지자 소극적이 되었고, 따라서 실전 에 투입되지는 못했다). 스키너가 이 실험에 성공하면서, 모든 동물의 행동은 사고와 느낌이 아니라 외부의 보상과 벌로 촉발된다는 그의 생각이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71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쥐와 비둘기 실험에서 발견한 사실이 모두 인간에게도 적용된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로 그다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스키너는 〈동물을 가르치는 법>이라는 논문에 이렇게 썼다. 때로는 관련 강화를 적용하고 때로는 그 강화를 억제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인간에게서) 특정 감정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안타깝게도 행동과학은 아직 감정 조절에서는 행동 조절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행동주의는 그 과학적 접근법이 명확히 보인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자극은 관찰할 수 있고, 반응은 기록할 수 있다. 언뜻 '객관적'으로 보인다. 행동주의는 생각이나 느낌을 파악할 때 구술에 의존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관찰 가능성과 측정 가능성이다. 티끌 하나 없어 보이는 이런 행동주의를 두고 스키너 자신도 애용한 농담이 있다. 어느 커플이 사랑을 나눈 뒤, 한 사람이 상대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좋았지. 나는 어땠을까?"
1950년대 대표적인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모두 와스프, 즉 백인 개신교도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젊은이들 아무도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당시 심리학을 돌이켜보면, 아무 관련도 없는 '와스프 심리학'과 '유대인 심리학'이 아예 따로 있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와스프들은 흰색 실험실에서 가운 차림에 메모판을 들고 씩씩하게 돌아다니면서 쥐를 고문할 새로운 방법을 고민했고, 그러면서 인간의 경험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는 줄곧 회피했던 반면, 유대인은 프로이트의 방법을 경멸하면서까지 '객관성'을 갈망하며 과학으로 검증 가능한 진실을 찾고자 그 골치 아픈 문제를 기꺼이 끌어안았다.
학파 2. 게슈탈트
20세기 초 베를린에서 시작된 이 심리학은 독일계 유대인들의 주도로 불가사의한 인간 정신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자 했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흥미로운 현상들을 발견하고, 놀라운 재능으로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
빛은 암흑에서 빛날 때 더 밝아 보인다든가, 회색은 보라색으로 둘러싸이면 녹색으로 보이고 파란 색으로 둘러싸이면 노란색으로 보인다든가, "banana cel(바나나 장어) 밟 지 마!"라고 말했는데 사람들은 "banana peel(바나나 껍질) 밟지 마!"로 들었다고 확신한다든가 하는 현상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인간 정신이 외부 자극에 대해 이상한 방식으로 곧잘 끼어드는 탓에 그 자극과 그것이 인간 내면에서 불러일으키는 감각 사이에는 이렇다 할 명확한 관계가 없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다.
특히, 대니는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이 독자들에게 자기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현상들을 직접 체험해보게 하는 방식에 특히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를테면 맑은 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보는 즉시 어떤 별들은 주변과 분리되 어 하나의 묶음으로 보인다. 카시오페이아, 북두칠성이 그렇다. 74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그동안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무시하기로 한 질문에 대해 고민했다. 뇌는 어떻게 의미를 만드는가? 뇌는 감각이 수집한 조각들을 어떻게 조리 있는 현실의 그림으로 완성하는가? 왜 그 그림은 주변 세상이 머릿속에 주입했다기보다 머리가 주변 세상에 강제한 것처럼 보일까? 사람은 기억의 파편들을 어떻게 조리 있는 하나의 인생 이야기로 바꾸는 걸까? 사람은 왜 자기가 본 것을 주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이해할까?
이런 질문은 실험실 쥐가 아무리 똑똑해도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다. 만약 질문에 답이 있다면, 오직 인간의 머리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니 또한 다른 유대인 심리학자들과 같이 객관성을 추구하려 했다. 게슈탈트 학파의 질문 방식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 그 시대를 살아내며 직접 경험한 현상들.. 이를테면 유럽에서 유대인 말살에 열을 올린 정권이 득세할 때 왜 일부 유대인은 그 본색을 알아보고 도망치고 일부는 그대로 남아 학살을 당했나? 와 같은 질문에 이끌려 심리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48년, 당시 총리였던 다비드 벤구리온은 이스라엘을 전 세계 모든 유대인에게 개방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5년 동안 이스라엘은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이민자 를 73만 명 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새로운 국가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나라에서 어떻게 하나의 전투부대를 조직할 것인가.
새 이스라엘 방위군에 들어온 젊은 남성 중 많은 수가 이미 말할 수 없는 공포를 견딘 사람들이었다. 팔에 숫자 문신(나치 강제수용소 수감자 번호)이 새겨진 사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하지만 누구도 전쟁 경험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나약한 사람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유대인이 되려면 적어도 잊을 수 없는 일을 잊은 척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국가라기보다 요새에 가까웠고, 군대는 가까스로 통제되는 혼돈 상태였다. 군인은 제대로 훈련도 안되고, 부대 조직은 엉망이었다. 전차 사단의 사단장은 부하들과 언어부터 달랐다. 1950년대 초,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 공식적인 전쟁은 없었지만, 무의미한 폭력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이스라엘군의 무기력이 드러났다. 군인은 문제가 생길 조짐만 보이면 냅다 달아났고, 장교는 앞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무기력한 군에 새로운 젊은이들을 징집하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한 분류 작업들이 심리학자들의 손에 맞겨지기 시작했다.
장교, 대니
대니는 좋은 장교가 될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우리는 주저 없이 선언했어. '이 친구는 절대 안 될 거야''저 친구는 그저 그래, '그 친구는 스타가 될 거야'라고." 그러다가 자신의 예측을 실제 결과와 비교하면서 문제를 발견했다. 다양한 후보가 실제로 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교 훈련을 받으면서 거둔 성적과 애초 그의 예측을 비교해보니, 예측은 엉터리였다. 하지만 어쨌거나 군대이고 맡은 일을 해야 하니, 하던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역시 대니답게, 그럼에도 자신이 그 일에 여전히 자신감을 느낀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이 상황이 유명한 '뮐러-라이어 착시' 같았다.
대니가 생각하기에 힘든 부분은 평범한 면접으로 그런 특성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었다. 타인을 평가할 때 나타나는 미묘한 어려움은 1915년에 미국 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가 설명 바 있다. 처음에 전반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장병은 다음에 실제보다 더 강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반적인 장점의 후광이 특정 능력 평가에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특정 능력의 후광이 전반적인 장점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는 내용이다. 그리고 손다이크의 결론은 이랬다. "뛰어난 현장 감독, 고용주, 교사, 부서장조차 개인을 별 개의 특징이 혼합된 존재로 인식해 어떤 특징을 다른 특징과 분리해 따로 점수를 매기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기서 지금도 사용되는 '후광 효과'라는 말이 생겼다.
대니는 후광 효과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군 면접 관들에게서 그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83
대니의 성격검사에서 나온 점수가 예견하는 것이 있긴 했다. 신병이 '어떤 일이든' 잘해낼 가능성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결과가 지능이나 교육과는 상관관계가 아주 적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능과 교육이라는 단순한 척도로는 알 수 없는 정보를 제공했다.'카너먼 점수'라고도 불리는 이 척도는 전체 국민을 군에 좀 더 유용하게 활용하고, 특히 군 지도자를 선발할 때 원초 적이고 측정 가능한 지능의 중요성을 줄이면서 대니 목록에 실린 자질의 중요성을 높이는 효과를 냈다. 86
때론 연구원 자격으로 워싱턴 DC 미국 국방부에 초청되어 '당신들은 우리와 총도 같고 전차도 같고 비행기도 같은데 어떻게 전투를 하는 족족 승승장구하고, 우리는 그렇지 못한지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무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안다. 심리의 문제일 거다. 전투에 나갈 장병은 어떤 식으로 뽑는가?'와 같은 질문을 받기도 했다.
사실 대니에겐, 이스라엘군이나 미국 국방부가 그에게 던진, "군의 이런저런 역할에 어떤 성격이 가장 잘 맞겠는가?" 하는 질문들은 사실 터무니없었다. 그는 이스라엘 청년들의 성격을 점쳐달라는 요청을 받은 셈이었다. 그래서 좀 더 생산적인 질문을 던졌다. "면접관이 직관으로 신병을 평가하다가 평가를 망치는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과정에서 대니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체적인 문제를 의뢰받았다가 포괄적인 진실을 발견한 것이다.
직감을 버리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대니는 훗날 대학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말할 때, 저 말이 과연 사실일까 자문하지 말아요. 그보다는 그 말이 어느 경우에 해당할까 자문하세요." 그것은 그 의 지적 본능이고, 정신의 고리로 진입하는 자연스러운 첫 단계였다. 어떤 사람이 방금 무슨 말을 했든 그 말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체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연구 스타일
어떤 생각이나 야심에 사로잡히면 불같이 달려들다가 크게 실망하면서 포기하는 식이다. "어느 하나가 잘 안 되면, 거기에 죽어라 매달리지 말고 다음 아이디어로 넘어가야해."
"나는 늘 아이디어는 널렸다고 생각하거든."
평범한 사회라면 대니 카너먼에게서 대단한 실용성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평범한 사회가 아니었다.
한때 대니는 새로운 열정에 사로잡혀 마시멜로 실험과 유사한 실험을 잔뜩 개발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연구를 일컫는 말도 만들었다. '단일 질문으로 알아보는 심리the psychology of single questons'.
그 중 하나를 보면, 이스라엘 아이들을 모아놓고, 캠핑을 떠날 예정이라며 1인용, 2인용, 8인 용 텐트 중 어디서 잠을 잘지 고르라고 했다. 대니는 아이들의 대답으로 소속감을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다. 뭔가 알아냈다 싶다가도 후속 실험에서 그 결과가 되풀이되지 않았다. 그는 실험을 포기했다. "과학자가 되고 싶었고, 내가 발견한 결 과를 되풀이해 얻지 못하는 한 과학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되풀이해 얻지 못했지." 그는 자신을 또 한번 의심하면서 성격 연구를 포기했고, 그쪽에 재주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니는 히브리대학의 급여가 적어, 그곳에서 은근슬쩍 부업처럼 수업을 더 하고 있었다. 통계학 입문 수업을 수강했던 한 학생은 언뜻 따분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예를 삶에서 끌어와 실감이 났어요. 단순히 통계만 가르치는게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가르쳐주셨죠."
대니의 종잡을 수 없는 변덕은 단점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더러 는 장점일 때도 있었다. 그 변덕 덕에 대니는 거의 무의식중에 자아를 확장했다.
알고 보니 그는 어떤 심리학자가 될지 결정해야 했던 적이 없었다. 그는 여러 종류의 심리학자가 될 수도 있었고, 될 것이기도 했다. 자신은 성격을 연구할 능력이 안 된다며 자신감을 잃는 동시에, 시각을 연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실험실을 만들었다.
대니는 열정을 느끼는 대상이 빠르게 변했고, 실패를 쉽게 인정했다. 그럴 줄알았다는 듯이.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는 무엇에든 도전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변심을 대단히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서 문제점을 찾아낼 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하고 진전을 이뤘다는 느낌을 받아."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요동치는 기분에 따라 변했다. 침울할 때는 쉽게 체념했고, 그러다 보니 막상 실패를 해도 놀라거나 당혹스러워하지 않았다(그는 이 이론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기분 이 좋을 때는 열정이 넘쳐서 실패 가능성을 잊는 듯했고, 그래서 생각나는 아이디어는 모조리 검토하곤 했다. 히브리대학 동료 심리학자 마 야바힐렐이 대니에 대해 말했다. "종잡을 수 없는 변덕 탓에 사람들이 돌아버릴 지경이었어요. 똑같은 걸 두고 하루는 천재적이라고 했다가 다음 날에는 헛소리라고 하고, 그다음 날에는 또 천재적이라고 했다가 다시 다음 날이면 헛소리라고 했죠."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 것이 대니에게는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비결일 수도 있었다. 그에게 기분은 아이디어 공장을 돌리는 윤활유였다.
대니의 다양한 지적 호기심에 그의 흥미 이외의 공통된 주제가 있다면, 남들이 눈치채기 힘들다는 것이다. 달리아 엣시온이 말했다.
"그분은 무엇이 시간 낭비이고, 무엇이 시간 낭비가 아닌지 구별하는 능력이 없었어요. 모든 걸 홍미를 느낄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죠."
대니는 정신분석이 못 미더웠지만("나는 늘 정신분석은 말장난이라고 생각했어 미국 정신분석가 데이비드 래퍼포트 Daid Ripapor 매사추세츠 스톡브리지에 있는 정신 치료 시설인 오스틴리그스센터 Auten Rge Coac 에서 함께 여름을 보내자고 하자, 초대를 받아들었다.
라이프 스타일
대니를 매일 보는 사람에게 대니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대니의 모습은 늘 변했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이 실험에 사용하는 그림처럼. 예전의 동료 교수가 말했다. "대니는 기분이 극과 극을 오갔어요. 어떤 대니를 만날지 알 수 없었죠. 마음에 상처도 잘 받고, 존경과 애정에 목말라했어요. 아주 예민하고, 주위에 잘 휩쓸렸고요. 모욕감도 쉽게 느꼈죠."
그는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웠다. 결혼도 하고, 아들 하나에 딸 하나를 두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대니는 여전히 일에 파묻혀 사는 것 같았다. 대니의 제자이자 나중에 뉴욕대학 교수가 된 주어 샤피라가 말했다. "일을 굉장히 우선시하는 분이에요. 행복한 분이라고는 말하기 힘들 겁니다." 그는 기분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거리가 생겼다. 극심한 괴로움에서 나온 거리감이었다. 이스라엘군 심리 부대에서 함께 일한 야파 싱어는 "여자들에게서 보호 본능을 유발했다"고 했다. 대니의 조교였던 달리아 엣시온은 또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은 늘 확신이 없었어요. 한번은 교수님께 갔는데, 아주 의기소침해 계신 거예요. 그 때 맡은 수업이 있었는데, 이러시더군요. '학생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 는 게 분명해.' 대체 뭐가 문제지, 싶었어요. 정말 이상했죠. 학생들은 교수님을 좋아했거든요." 다른 동료는 이렇게 전했다. "대니는 유머가 없는 우디 앨런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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