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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워지기/문장 발효 과학

북 |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 5. 그 사 람- 나를 떠나도

by 청춘만화 2024. 6. 5.

책 리뷰,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과 그의 단짝 아모스 트버스키. 행동경제학으로 발전한 그들의 연구는 《생각에 관한 생각》으로 출간되어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성향이 극과 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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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적 효용과 후광 효과의 그들에 가려 겉으로 드러난 - 발 밑에 떨어져 너무나 명백히 보이는 - 사실이라 밑을 만한 곁가지만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한 권의 책이 나오고, 그 책의 배경이 되는 치열힌 연구들. 그리고 그 가운데 마주보고 서 있는 대니와 아모스. 그 개인과 개인의 삶은 그들의 열정만큼이나 진솔하고 드라마틱한 그들의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생각에 대한 생각,

이 내용을 정리하면서,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심리학은 인간의 심리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이론과 두터운 명성에 가려 정작 사람을 보지 못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책이 출간된 배경 
2. '생각에 관한 생각' 책의 저자 대니에 대해
3. '전망 이론' 공동 연구자 아모스에 대해 
4. 공동 연구, 냉정과 열정 사이    
👉  5. 그 사 람- 나를 떠나도

 

 

인터뷰, 찬란한- 깊이를 모를 정도로의 

쇼어는 대니와 아모스를 1983년 8월,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찾아냈다. 둘은 미국심리학회 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당시 대니는 49 세, 아모스는 46세였다. 둘은 함께 쇼어와 여러 시간 이야기했고, 또 한 사람씩 따로 몇 시간을 더 이야기했다. 이들은 처음에 한참 신나게 연구하던 때부터 공동 연구의 역사를 차근차근 짚어갔다.

아모스가 쇼어에게 말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어요. 심리학을 억지스럽게 꾸며놓은 실험실 밖으로 끌어내어, 주변 경험을 토대로 풀어갔죠." 쇼어는 그들 연구가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인공지능 분야에 영향을 주었는지 물었다. "꼭 그렇진 않아요. 우리는 인공지능 대신에 타고난 어리석음을 연구하죠."

"내가 결혼한 뒤로,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에 온 뒤로 힘들었어요." 대니의 고백이다. 아모스는 여전히 얼버무렸지만, 쇼어가 두 사람과 한참 대화를 나눠보니 둘은 6년 전 이스라엘을 떠난 뒤로 문제가 많았다. 대니는 사람들이 공동 연구를 실제와 얼마나 다르게 이해했는지, 그 불만을 아모스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사람들은 내가 아모스를 시중든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는 쇼어보다 아모스를 향해 말했다. 공동 연구로 손해 보는 사람은 당연히 나라고. 물론 자네가 기여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 정식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내 특기도 아니고, 그 부분은 우리 연구에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 하지만 내가 기여한 부분은 그렇게까지 특별하지 않으니까."

아모스는 대니보다는 간결하게, 두 사람이 공평한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왜 당연히 다른 사람들 탓인지 설명했다. "공을 따지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지치는데, 외부 세계는 공동 연구에 도움이 못 돼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들쑤시고, 둘 중 한 사람은 떨어져 나가길 바라죠. 그게 균형의 규칙인데, 합동 연구는 불균형 구조예요. 안정된 구조가 아니죠. 사람들은 그게 못마땅한 거예요."

대니는 아모스와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가 전적으로 외부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학계에서 성공하면 전리품 같은 게 있는데, 결국은 한 사람이 그걸 다 갖거나 상당 부분을 갖게 되죠. 이쪽이 원래 그렇게 몰인정해 요. 트버스키는 그걸 제어하지 못해요. 제어할 마음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대니는 두 사람이 공동으로 이룬 영광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는 아모스를 보며 느낀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아모스 그늘에 상당히 가려져 있는데, 우리 관계는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예요. 샘이 나니까요! 정말 당혹스러워요. 샘이 나다니, 그런 감정은 아주 질색인데•••••. 지금 내가 말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미국, 이직 시장에서의 첫 걸음. 그리고 차이의 시작  

아모스는 훗날 사람들에게, 하버드와 스탠퍼드 중에 하나를 골랐을 때 어떤 후회를 할지 상상했다고 말하곤 했다. 하버드를 택하면 스탠퍼드가 있는 팰로앨토의 날씨와 생활 여건을 놓쳐 후회하고, 통근을 원망할 것이다. 스탠퍼드를 택하면 하버드 교수로 불리지 못한 것 을 아주 잠깐 후회할 수 있는데, 그에게는 대니가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면 하지 않을 후회였다.

하지만 막상, 스탠퍼드는 대니에게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로스가 말했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이 둘이나 필요할까? 냉정하게 따져서, 아모스만 고용하면 대니와 아모스를 동시에 고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죠."

대니는 아모스와 같이 미시간 대학으로 가기를 기대했겠지만, 아모스는 하버드와 스탠퍼드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버드와 스탠퍼드가 대니를 외면하고, 버클리도 그를 고용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 친 뒤로 대니는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에서 (아내) 앤 옆에 자리를 잡았다. 대니와 아모스는 주말마다 교대로 비행기를 타고 상대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첫걸음의 작은 차이여서 미처 실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아직 누적되지 않은, 나름 신선한 상대적 박탈감이었어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편향된 외부 평가들

1984년에 아모스가 맥아더 '천재상'을 받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이스라엘에 잠시 머물던 중이었다. 이 상에는 상금 25만 달러 외에도 연구비 5만 달러와 고급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보도 자료에서는 아모스가 "창조적 연구에 비범한 독창성과 열정을, 그리고 자기 결정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사상가라며 축하했다. 그 보도 자료에 아모스의 연구로 유일하게 인용된 것은 대니와 함께한 연구였다. 하지만 대니는 언급되지 않았다.
아모스는 상을 싫어했다. 사람들의 차이를 과장하고, 좋은 점보다 해가 많으며, 어떤 경우든 수상자 외에 상을 받을 자격이 있거나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서 기쁨보다 실망을 더 많이 유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맥아더상이 딱 그랬다.

여러 상과 더불어 아모스의 업적을 칭송하는 기사와 책이 쏟아 졌는데, 대니와의 공동 연구를 마치 아모스 단독 연구인 양 칭송했다. 그나마 공동 연구를 언급하더라도 대니 이름을 뒤에 놓았다. 트버스키와 카너먼.

대니는 자신과의 공동 연구로 아모스가 새삼 관심을 받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학자들은 회의에 아모스를 초청하려 했고 언어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심지어 컴퓨터과학자까지 덩달아 그를 초청하고 싶어 했다.
대니가 마일스 쇼어에게 털어놓았다. "그런 회의에 초청받지 못하면, 가고 싶지 않더라도 짜증이 나죠. 아모스가 그렇게 많은 회의에 초청받지 않았다면 내 삶은 좀 더 나아졌을 거예요"

 

 

운수 좋은 미국날

당시 대니는 여전히 들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전망 이론을 끝내고 틀짜기 효과에 착수한 터라 우리는 기분이 최고조였어. 누가 우리를 이기겠느냐 싶었던 같아. 그때 우리 사이에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어." 대니는 아모스가 스탠퍼드에서 전통적인 교수직 지원 발표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탠퍼드가 교내 역사상 아마도 가장 단시간에 아모스에게 교수직을 제안한 이후에 진행된 첫 발표다. 아모스는 발표에서 대니와 함께 연구했던 전망 이론을 소개했다. 대니가 말했다. "아모스가 마냥 자랑스럽더라고, 샘이 나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은 거야."

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둘의 상대적 지위가 극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에 찾아온 아모스는 약간 거들먹거리듯 행동했다. 대니는 팰로앨토로 올라갔고, 아모스는 밴쿠버로 내려갔다. "아모스가 남을 얕보는 성향이 있었거든. 그 친구가 밴쿠버를 꽤나 시골로 생각한다는 게 느껴지더라고." 대니의 말이다.

하루는 밤에 둘 이 이야기를 하다가 아모스가 불쑥, 스탠퍼드 대학에 있으면서 느끼는 차이점은 모든 사람이 일류인 곳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니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가 시작이었어. 아모스가 대단한 뜻으로 한 말도 아니고, 그 친구도 분명 그 말을 후회했겠지만, 아모스는 약간 건방진 동정심을 느꼈고, 나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1978~1979년 학기를 시작하러 팰로 앨토를 떠나 밴쿠버로 향하던 대니는 삶의 뜻밖의 행운을 새삼 절감했다. 지금 지구 반대편에는 두 아이가 있고, 예전 동료들이 가득한 오래된 연구실이 있고, 한때 그가 속한 곳이라고 여긴 사회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유령을 이스라엘에 남겨둔 채 그곳을 떠나왔다. "내가 무언가를 생각할 때 그 밑바탕에 그동안 내가 스스로 삶을 바꿔왔다는 의식이 깔려 있었어. 아내도 바꿨잖아."

 

나는 늘 사실과 반대로 가정을 해보면서 살아. 
지금의 삶을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는 삶과 끊임없이 비교해"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던 대니는 문득, 제대 5일 전, 전투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은 조카 일난을 추억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일란이 죽은 뒤에 그를 사랑한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그때의 전투기 추락 사고를 되돌리려는 욕구가 있었고, 대니는 그 강한 욕구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입 밖에 낸 수많은 문장은 '만약'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A - 만약 일란이 일주일만 일찍 제대했더라면, 만약 조종사가 화염으로 앞을 못 볼 때 일란이 조종을 했더라면,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손실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상상의 길을 표류하는 식으로 손실에 대처했다. 그런데 대니는 이 표류가 무작위 같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현실을 대체하는 상황을 만들 때 일정한 제약이 있는 것 같았다.

B - 사고가 일어났을 때 만약 일란의 복무 기간이 1년 남았었다면, 누구도 "그가 1년만 일찍 제대했더라면"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조종사가 그날 독감에 걸렸더라면'이라거나 '일란의 비행기가 기체 결함으로 이륙을 못했더라면'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나아가 이스라엘에 공군이 없었더라면'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사실과 반대되는 그런 가정은 모두 그의 목숨을 살렸겠지만, 그를 사랑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비행기 추락 사고를 피할 방법은 물론 100만 가지가 넘지만, 사람들은 그중 몇 가지만 생각하는 듯했다.
일란의 비극을 되돌리기 위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상상에는 일정한 유형이 있었고, 대니가 상상하곤 했던 지금과 다른 삶에 나타나는 유형과 닮아 있었다.

대니는 밴쿠버에 도착하자마자 아모스에게, 예전에 후회에 관해 둘이 토론할 때 아모스가 적어둔 것을 있는 대로 좀 보내달라고 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 두 사람은 1년 이상 후회의 규칙을 이야기했었다. 이들은 주로 사람들이 언짢은 기분을 미리 예상하는 것에, 그리고 그 예상이 선택을 어떻게 바꿔놓는지에 흥미를 느꼈다.

이제 대니는 후회를 비롯한 여러 감정을 그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살펴보고 싶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되돌리는지 연구하고 싶었다. 그와 아모스는 그런 연구가 판단과 결정에 관한 자신들의 연구에 어떻게 반영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림 짐작의 제약, 상상의 규칙 

대니는 회상 용이성, 대표성, 기준점 설정에 이어 네 번째 어림짐작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시뮬레이션 어림짐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의 위력과 관련한 어림짐작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미래를 시뮬레이션한다. "괜히 동의하는 척하지 않고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면 어떨까? 저들이 공을 나를 향해 치고, 그 땅볼이 내 다리 사이로 지나간다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한다면?" 과 같이, 사람들은 어느 정도 다양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판단과 결정을 내리곤한다. 하지만 모든 시나리오가 다 똑같이 상상하기 쉬운 건 아니다. 여기에는 제약이 따랐다. 

비극을 '되돌릴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 제약이 따랐듯이, 어떤 일이 일어난 뒤에 그 일을 머릿속에서 되돌릴 때 나타나는 규칙을 찾아라. 그러면 덤으로, 현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머릿 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시뮬레이션하는지도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대니는 밴쿠버에 혼자 머물면서, '존재하는 세계'와 '존재하지 않았지만 존재했을 수 있는 세계' 사이의 거리에 대해 새롭게 생긴 관심에 몰두했다. 그와 아모스가 연구했던 것 중에는 누구도 일정한 체계나 규칙을 찾으려 하지 않은 분야에서 체계나 규칙을 찾는 것이 많았다. 이제 또 한번 그런 기회가 왔다. 대니는 사람들이 현실을 되돌려 그 대안을 찾는 방법을 조사해보고 싶었다. 간단히 말하면 상상 규칙을 찾고 싶었다.

다들 분노의 원인은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런 감정을 부채질 한 것은 또 다른 현실과의 근접성, 즉 티스 씨가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시간에 얼마나 '가깝게' 도착했느냐는 것이다. 대니는 이 주제에 대한 강의에 대비해 이렇게 적었다. "티스 씨가 더 화가 나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 5분 전에 떠나버린' 비행기를 '탈 확률'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이런 예에는 현실과 공상이 묘하게 뒤섞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면이 있다. 원한다면 세상에 없는 유니콘도 상상할 수 있는 크레인 씨는 왜 정작 30분 지각을 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해서 화를 주체하지 못하게 된걸까? 공상의 자유에는 제약이 있는 게 분명하다."

대니가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런 제약이었다. 그는 지금은 '사후 가정적 감정'이라 부르는 것을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사후 가정적 감정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실과 반대되는 대안 현실을 가정하도록 부추기는 감정이다. 후회는 가장 명백한 사후 가정적 감정이지만, 좌절과 부러움도 후회와 공통된 본질적 특징이 있다.

대니는 아모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런 감정을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에서 나오는 감정이라고 했다. 그 감정은 단순한 수학으로도 묘사할 수 있었는데, 대니는 그 감정의 세기가 '대안의 바람직함' 과 '대안의 실현 가능성'이라는 두 변수의 곱이라고 했다.

후회와 좌절을 불러오는 경험을 되돌리기가 늘 쉬운 것은 아니다. 좌절한 사람은 주변 환경의 특징 일부를 되돌려야 했고, 후회하는 사람은 자기 행동을 되돌려야 했다. 대니는 또 이렇게 썼다. 그런데 되돌리기의 기본 규칙은 좌절과 후회에 똑같이 적용돼. 둘 다 대안이 되는 상태에 도달 하는 어느 정도 그럴듯한 길이 필요하지."

부러움은 달랐다. 부러움은 대안에 도달하는 길을 상상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필요 없었다. 대니는 또 이렇게 썼다. "대안의 회상 용이성은 자신과 부러움의 대상 사이의 유사성에 지배되는 것 같더군. 부러움을 느끼려면, 타인의 상황에 놓인 나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으면 그만이야. 내가 어떻게 타인의 상황을 차지했는지를 설명하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도 필요 없어." 부러움은 이상하게도 어느 면에서는 상상조차 필요치 않았다.

 

 

상상

상상은 종착지가 무한한 비행이 아니었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그 가능성을 줄여 이치에 맞는 세계로 만드는 도구였다. 상상은 되돌리기 규칙을 따랐다. 그 규칙 하나는 대안이 될 다른 현실을 만들 때 되돌릴 것이 많을수록 머릿속에서 그것을 되돌릴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대규모 지진으로 사망한 사건은 번개에 맞아 사망한 사건보다 되돌리기가 어려워 보였다. 지진을 되돌리려면 지진이 유발한 것들을 모두 되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니는 편지에 "어떤 사건에서 나온 결과가 많을 수록, 그 사건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변화가 크다"고 썼다. 관련 있는 또 하나의 규칙은 "오래된 사건일수록 바꾸기 힘들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 결과가 축적되고, 되돌릴 것이 많아졌다. 되돌릴 것이 많을수록 머릿속은 사건을 되돌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때 어쩔 수 없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는 아마도 시간이 상처를 치유하는 한가지 방법일 것이다.

 

 

주목 규칙

더 일반적인 규칙은 대니가 '주목 규칙 Focus Rule‘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일정한 상황에서 움직이는 배우나 영웅을 상상하는 성향이 있어. 가능하면 상황을 고정해두고 배우를 움직이지. … 우리는 오즈월드[케네디 암살범]의 총알을 피 하자고 돌풍을 만들어내지는 않아." 이 규칙의 예외라면 사건을 되돌리는 공상에서 주연이 자신일 때였다. 이 경우에는 자기 행동보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되돌리려 했다. "나를 바꾸거나 대체하기는 다른 사람을 바꾸거나 대체하기보다 훨씬 힘들어."
대니가 편지에 썼다. "내가 일련의 새로운 특성을 부여하는 세계는 내가 사는 세계와는 당연히 거리가 멀겠지. 내게 약간의 자유는 있겠지만, 자유자재로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어."

되돌리기의 가장 일반적인 규칙은 놀랍거나 예상치 못한 것과 관련있었다.

중년의 은행 간부가 날마다 같은 길로 출근하다가 어느 날 다른 길에 들어섰는데, 마약에 취해 픽업트럭을 운전하던 청년이 빨간불에 차를 물면서 그의 차를 옆에서 들이받는 바람에 사망했다.
A - 사람들에게 이 비극을 되돌려보라고 하자, 은행 간부가 그날 택한 길 에 자연스레 사람들의 생각이 쏠렸다. 평상시처럼 갔더라면!
B - 그런데 은행 간부를 평상시에 출근하던 길로 돌려놓고 마약에 취한 청년을 똑 같은 트럭에 태우되, 은행 간부가 평상시에 출근하던 길에서 정지 신호등을 무시한 채 달렸다고 가정했더니, 누구도 '그날 다른 길로 출근 했더라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에 하던 방식에서 덜 일상적인 방식으로 옮겨갈 때 머릿속에서 느끼는 거리는 그 반대 방향으로 옮겨갈 때의 거리보다 훨씬 멀었다.

머릿속에서 어떤 사건을 되돌릴 때는 놀랍거나 예상치 못한 것을 제거하는 성향이 있었다. 확률 규칙을 따른다는 말은 아니다. 그 남자를 구하는 훨씬 쉬운 방법은 시간을 바꾸는 것이다. 은행 간부든 청년이든 그 비극의 순간에 몇 초만 빨리 또는 늦게 도착했더라면, 두 사 람은 충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건을 되돌릴 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예외적인 부분을 되돌리기가 훨씬 쉬웠다.
대니는 아모스에게 "히틀러를 상상으로 되돌리면 재미있다"면 서, 히틀러가 애초의 꿈을 실현해 빈에서 화가가 되었다면 최근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지 이야기했다. "사후 가정적 사진을 하나 더 상상해보 자고, 수정 전에 히틀러가 여자가 될 가능성도 절반이었어. 그가 훌륭 한 화가가 될 확률은 아마도 여자로 태어날 확률보다 결코 더 높지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히틀러를 되돌리는 이런 방법 중에 왜 하나는 꽤 받아 들일 만하고 하나는 말이 안 될 정도로 쇼킹하다고 생각할까?"

아모스는 대니의 새로운 생각에 흥미가 있는 듯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각을 보태지는 않았다.

아모스와 대니는 전부터 일상에서 느끼던 서로의 실수와 감정에 대해 솔직히 대면하면서 그에 대한 심리적 원인과 규칙을 찾고자 했다.자신의 결혼과 함께 울며 겨자먹기로 미국에 정착하게된 아모스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평가는 아모스에게만 집중되는 외부의 평가, 관심을 그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밖에 마주할 수 없다면 - 그런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상황에서 - 어떠면 대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되돌리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니는 일련의 과정에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 후회, 되돌리기, 상상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대니의 그런 감정은 아모스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니의 연구 내용이 담긴 내용을 읽은 아모스는 이미 직감적으로도 대니의 감정을 읽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모스가 선뜻 생각을 보탤 수 없었던? 않았던 배경이 아닐까?

 

 

좌절감

하지만 대니를 압도한 감정은 좌절감이었다. 대니는 지난 10년 간 거의 내내 아모스가 있을 때 아이디어를 냈다. 항상 둘 중 한 사람이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 아이디어를 곧바로 공유했다. 그러면 아이디어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면서 둘의 생각이 하나가 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니는 마일스 쇼어에게 "내가 시작하는 게 많은데, 그 결실은 항상 내 손을 벗어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미루어 비유해보건데 대니는 기획자, 아모스는 개발자 정도의 R&R이 아니었을까..

그런 그가 이제 다시 혼자 일하게 되었고, 자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줄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니가 말했다. “나는 아이디어가 넘치는데. 아모스가 없는 거야. 그래서 아이디어가 버려졌지. 그걸 구체화할 수 있는 사람은 아모스인데,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으니까.”

대니가 아모스에게 편지를 쓴 지 몇 달이 지난 1979년 4월, 그와 아모스는 미시간대학에서 한 팀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다. 대니에게 이 강연은 두 사람이 떨어져 있던 9개월 동안 자신 이 생각한 내용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였다. 대니는 그것을 ‘가능한 세계의 심리 The Pychology of possible world'라 불렀다. “우리는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 우리가 현실에 반응하는 감정에, 그리고 현실 이해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니는 되돌리기 규칙을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실험할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두었다. 마약에 취한 청년이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사망한 은행 간부 말고도 불행한 사람은 많았다. 이를테면 심장마비가 와서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죽은 남자도 있었다.
강연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은 채 모여서 서성였고,

오래전부터 아모스의 정신적 스승 이었던 클라이드 쿰스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 많은 아이디어가 대체 어디서 나온 건가?"
그러자 아모스가 대답 했다. "대니와 저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대니 머릿속에서 전개되던 이야기가 바뀌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대니와 저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훗날 대니는 이 순간을 둘의 관계가 끝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가 나중에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이 순간을 되돌리려 했을 때, '클라이드 쿰스가 그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거나 '내가 아모스만큼 마음이 모질었다면' 또는 '내가 애초에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았더라면'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은 "아모스가 겸손했더라면"이었다. 대니의 상상에서는 아모스가 배우이고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쯤하면, 옆에서 쿰스 교수가 대니를 칭찬할때 조금이라도 거들었으면, 아모스는 이번에야말로, 대니 스스로가 준비한 이 일에 대한 공로를 한 번쯤은 인정해 줄만한 기회가 있으나 애초에 그런 기회는 잡으려 하지 않았다. 미시간대학에서의 강연 이후, 대니는 되돌리기 프로젝트로 몇 차례 강연을 더 했고, 아모스를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전에 없던 일이다.

머릿속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가능성이 스쳐간다. "나는 아모스가 당시 상황에 기대 관계를 회복해주길 기대했는데, 아모스는 그러지 않았어. 그래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대니의 말이다.

 

 

 

분리, 어쩌면 분해

과거 약 10년간 두 사람은 제3자는 자기들의 관심 영역 근처에도 부르지 않는다는 엄격한 규칙을 세워두었다. 그러다가 1979년 말 또는 1980년대 초에 대니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젊은 조교수 데일 밀러에게, 사람들이 현실을 그 대안이 되는 상황과 어떤 식으로 비 교하는지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밀러가 아모스에 대해 물으면, 더 이상 같이 일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밀러는 "대니 교수님은 아모스의 그늘에 있었고, 그 점을 크게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대니와 밀러는 함께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되돌리기 프로젝트 Undoing project라고 부를 만한 논문이었다. “두 분은 다른 사람을 찾기로 합의하신 것 같았어요. 그리고 대니 교수님은 아모스와의 공동 작업은 이제 끝이라고 거듭 강조하셨고요. '걱정하는 대화를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해요. 한번은 자기에게 상냥하게 대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모스 이후 첫 인간관계라면서..

 

 

 

말하지 않는 비밀

한편 아모스는 러시아에서 도청 장치가 붙은, 난방도 안 되는 호텔 방에서 그가 ‘되돌리기 프로젝트'라 이름 붙인 문서를 보충하며 시간을 보냈다. 손으로 쓴 이 문서는 마침내 40여 쪽이 되었다. 문서를 읽다보면 행간에 서, 다이아몬드 세공인이 원석을 기다리며 가만히 목을 가다듬는 소리 가 들려온다. 아모스는 대니의 아이디어를 완전한 이론으로 바꿀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대니는 그 사실을 몰랐고, 아모스가 예시를 만드느라 분주하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아모스는 대니의 긴 편지에 답하지 않고 혼자 메모를 남기면서, 대니가 쏟아내는 생각들을 정리했다.

결정 이론에 관한 아주 기본적인 내용인데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제목을 고심했다. 제목이 정해져야 어떤 내용을 쓸지 감이 잡혔다. 초기 메모에는 '되돌리기 어림 짐작'이라고 흘려 써놓았다가 이론을 만든 뒤에는 '가능성 이론 possiblity Theory이라 이름 붙였다. 그 뒤 '시나리오 이론 Scenario Theory'으로, 그리고 다시 대안 상황 이론 Theory of alternative state s'으로 바꿨다. 이 주제와 관련 한 마지막 메모에서는 '그림자 이론 Shadow theory'이라 불렀다.

아모스는 이렇게 적었다. "그림자 이론의 요지는 여러 대안의 맥락 또는 여러 가 능성의 집합이 우리의 감정 상태를 결정할 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우리의 기대, 우리의 해석, 우리의 회상, 우리의 원인 분석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주제에 관한 생각을 마무리하면서 많은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현실은 가능성의 구름이지 한 점이 아니다."

아모스가 대니의 생각에 흥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더 이상 한방에서 문을 닫아둔 채 대화하지 않을 뿐이었다. 예전 같으면 들이 함께 주고받았을 대화를 이제는 각자 혼자서 이야기했다. 두 사람 사이에 전에 없던 거리가 생긴 탓에, 이제는 어떤 생각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아모스는 마일스 쇼어에게 불만을 덮어놓곤 했다. 우리는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않아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니까, 그 아이디어가 편지에 적혀 있으니까요. 전에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전화부터 걸었어요. 이제는 혼자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혼자 몰두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아이디어가 좀 더 사적인 것이 되고, 서로 자기 아이디어라는 걸 기억해요. 예전에는 절대 그러지 않았는데."

대니는 자신의 새 아이디어에 몰두하면서, 아모스가 그것을 분해해 자기 것인 양 재구성하게 놔두기보다는 아이디어를 회수했다. 아모스는 여전히 주말마다 밴쿠버를 찾아갔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새로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모스는 예전처럼 공동 연구를 할 수 있으리 라 믿고 싶었던게 분명하다. 하지만 대니는 그렇지 않았다. 

 

 

 

Deploy 그리고 CS 

아모스와 대니는 북아메리카에 도착하자마자 함께 논문을 무더기로 발표했다. 대부분은 이스라엘을 떠날 때 진행하던 것들이다. 하지만 1980년대 초에 두 사람이 함께 논문을 쓰는 방식은 그 전과는 달랐다. 아모스는 두 사람 이름으로 손실 회피에 관해 한 편을 썼고, 여 기에 대니가 부수적으로 몇 단락을 덧붙였다.

대니는 아모스가 '되돌리기 프로젝트'라 불렀던 것을 단독으로 완성해 제목을 ‘시뮬레이션 어림짐작 Simulaton heuristic’이라 붙이고 맨 위에 두 사람 이름을 적어, 두 사람의 다른 논문과 기타 학생, 동료의 논문을 모은 책에 실어 발표했다(그 뒤에는 아모스가 아니라 자기보다 어린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동료 데일 밀러와 함께 상상 규칙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아모스는 경제학자들을 직접 겨냥해, 전망 이론의 세부적 문제를 수정한 논문도 한 편 썼다. 제목은 ‘개정 된 전망 이론 advences in prospect theory’이었고, 주로 대학원생 제자 리치 곤 살레스와 함께 작업했지만, 대니와 아모스의 이름으로 잡지에 실었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은 여전히 예전처럼 함께 작업한다는 착각을 불식시키지 않았고, 두 사람을 떨어뜨리려는 힘이 더욱 거세지는 와중에도 그러했다. 하지만 공동의 적이 점점 늘어도 두 사람은 합치지 않았다. 대니는 아모스가 두 사람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점점 불편해졌다.

 

 

린다 실험, 그리고 T와 F의 차이 

아모스는 호전적으로 타고났고, 대니는 인내하도록 타고났다. 대니는 충돌을 피했다. 대니는 공격하는 이들과 논쟁하기 보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실험 사례 개발하는데 집중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실험이 린다 실험이다.  

린다를 설명하는 여덟 가지 항목 중에 네 항목을 주고, 린다가 어느 항목에 해당할지 항목별 확률을 추정해보라고 했다. 이때 A집단에게 준항목에는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이다"가 B집단에게 준 항목에는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이고, 여성운동에 적극적이다"가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학생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여덟 가지 묘사 중에 핵심은 그 두 항목뿐이었다. 실험 결과, B집단이 '린다는 은행 창구 직원이고, 여성운동에 적극적이다"에 부여한 확률은 A집단이 '린다는 은행 창구직원이다"에 부여한 확률보다 높았다.

사람들이 확률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짐작 법칙이 잘못된 판단을 불러왔다. 일단, 어떤 논리가 이야기로 구성되면,사람들은 그 논리를 잘 알아보지 못한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는 힘은 대니와 아모스가 ‘대표성'이라 부른 것이다. 판단 대상과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그와 관련한 대표적 이미지와의 유사성이다.

첫 번째 린다 실험에서 학생들은 린다의 묘사에 생각을 고정한 채, 항목별 구체적 묘사들을 자기 머릿속에있는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이미지와 비교하면서, 은행창구 직원이고 여성운동에 적극적이라는 특별한 경우가 은행 창구 직원이라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아모스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대상을 바꿔가며 실험을 계속이어갔다. 논쟁에서 이기려면, 사람들이 실제로 실수를 저질러야 했기 때문이다. 실험에 따르면 의사들 조차 압도적 다수가 대학생들과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아모스와 대니는 이렇게 썼다. “참가자 대부분이 기초적인 논리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실망한 눈치였다.

결합 오류 conjunction fallacy. 흔히 나타나는 오류라서, 결합 오류를 저지른 사람들은 조금 더 신중했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모스는 대니와 함께 쓰기 시작한 '결합 오류'에 관한 논문을 논쟁 종결자로 느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대니와 아모스가 말한 대로가 아니라 확률에 따라 생각하는가에 관한 논쟁을 끝장내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모스와 대니는 사람들이 "아마도 가장 단순하고 가장 기본적인 확률 법칙"을 지키지 않는 이유와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발생 가능성이 낮은데도 구체적인 묘사를 택하는 이유는 그 묘사의 '대표'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런 정신적 결함이 현실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분야를 지적했다. 이를테면 어떤 예측을 내놓을 때 내적 일관성을 갖춰 자세히 묘사하면, 비록 실현 가능성이 적어도 더 믿을 만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변호사가 사람이나 사건을 묘사할 때 '대표성'을 띠는 자세한 묘사를 덧붙이면, 비록 사실성이 떨어져도 해당 사건의 설득력을 그 즉시 높일 수 있다. 아모스와 대니는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짐작 법칙의 위력을 전면적으로 다시 증명했다. 그들이 '어림짐작'라 이름 붙인 희한한 힘이다.

대니는 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그리고 아모스에 대해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이스라엘을 떠나는 순간부터 서로 다른 조류에 갇혀 헤엄치느라 서로에게서 멀어질 힘도 없는 사람들 같았다.

아모스는 논리에 끌렸고, 대니는 심리에 끌렸다. 대니는 인간의 비합리성 증명에 아모스만큼의 관심은 없었다. 결정 이론에 대한 대니의 관심은 거기에 필요한 심리적 통찰에 그쳤다. 훗날 대니는 이렇게 말했다. "근본적인 논쟁이야. 우리가 지금 하는 게 심리학이냐. 결정 이론이냐?" 대니는 심리학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강? 적 

1993년 10월, 대니와 아모스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회의 에 우연히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하루는 저녁에 같이 산책을 나갔다 가 아모스가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독일 심리학자 게르트 기거렌처 Ged Glecenza 가 둘의 연구를 새삼 비판하며 새롭게 주목을 끌고 있었다. 처 음부터 대니와 아모스의 연구를 가장 언짢아한 사람들은 두 사람이 정신적 실수에만 초점을 맞춰 사고의 허점을 과장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니와 아모스가 보기에 그는 지적 싸움을 벌일 때 흔히 사용 하는 규칙을 무시함으로써, 둘의 연구를 왜곡해 두 사람이 인간에 대해 대단히 운명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제시한 가장 확실한 증거를 비롯해 거의 모든 증거를 아예 무시 했다. 그는 평론가들이 가끔 그러듯, 자기가 경멸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묘사해놓고는 그것이 틀렸다고 비난했다.

대니가 그때를 회상했다. "아모스가 기거렌처를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길래 내가 그랬지. '난 생 각 없어. 시간이 많이 들 거야. 화도 많이 날 거고. 화나는 건 질색이야. 어차피 승부도 안 날 건데.' 그랬더니 아모스가 그러더라고. '내가 친구 로서 자네에게 뭘 부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지금 친구로서 부탁하는 거야." 대니는 가만히 생각했다. "한 번도 없었지. 거절할 수가 없겠군." 그리고 오래지 않아 대니는 거절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모스는 기거렌처를 반박하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끝장내고 싶어 했다.

 

기거렌처는 진화심리학이라 알려진 생각을 지지했다. 진화 심리학은 인간 정신이 환경에 맞게 진화하면서 환경에 매우 잘 적응하게 되었으리라고 보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쉽사리 체계적 편향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아모스는 이 개념을 터무니없다고 보았다. 인간 정신은 완벽하게 만들어진 도구라기보다 대응 기제에 가깝다. 아모스는 월스트리트 경영자들에게 강연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뇌는 대충 말하면 확실성을 최대한 제공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습니 다. 그러니까 주어진 상황에서 모든 불확실성을 표현하기보다 주어진 해석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경우를 찾도록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 정신은 스위스 군용 칼과 같다. 거의 모든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어느 것에도 딱 들어맞지는 않아서, 완벽하 게 '진화'했다고 보기 힘들다. '진화심리학자의 이야기를 한참 들어보 면, 진화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아모스의 말이다.

대니는 기거렌처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고, 어쩌면 그에게 접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모스보다는 내가 늘 비평가들에게 더 공감했지. 나는 거의 자동적으로 반대편 입장에서 생각하는 성향이 있 으니까." 대니의 말이다.

그는 아모스에게 편지를 쓰면서, 기거렌처가 정신이 혼란스러운 감정에 휘말렸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머리를 맞대고 그의 생각을 바로잡을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자 아모스가 쏘아붙였다. "행여 그렇더라도 자네는 그렇게 말하 면 안 돼.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 대니는 "친구로서 아모스를 도와주기로 했지만, 오래지 않아 또 한 번 비참한 기분을 맛보았다.

두 사람은 기거렌처에 반박하는 글을 거듭 고쳐 쓰는 동시에, 두 사람 사이의 논쟁도 계속 고쳐 써야 했다.

 

 

 

이혼 

대니의 언어는 아모스에게 항상 너무 물렀고, 아모스의 언어는 대니에 게 너무 거칠었다. 대니는 항상 달래는 사람이었고, 아모스는 괴롭히 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마음이 맞는 구석은 전혀 없었다.

대니 : 대니가 아모스에게 편지를 썼다. "기거렌처가 쓴 후기를 재논의한다는 게 너무 마음이 불편해서, ...나는 이 문제를 토론할 기분이 아니야. 그리고 자네 기분이 내게는 너무 낯설어." 그래도 아모스가 계속 다그치자 나흘 뒤에 대니는 이렇게 덧붙였다. "새로운 은하계 400억 개를 발견했다는 발표가 나온 날, 우리는 후기에 있는 단어 여섯 개 를 두고 논쟁하고 있어. (...)'반복하다'냐 '거듭하다'나의 논쟁을 멈추는 데 은하계 숫자도 아무 소용이 없다니 정말 놀랍군." 그리고 이렇게 썼다. "이제부터는 이메일로 해야겠어. 대화를 하고 나면 항상 오랫 동안 화가 나서, 도저히 안 되겠어."
아모스 : 그러자 이번엔 아모스가 답장을 보냈다."자네의 예민함을 이해할 수 없어. 평소 자네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개방적이고 덜 방어적이야. 그런데 자네가 좋아하는 문장을 내가 고쳐 쓰면 불같이 화를 내고, 악의가 전혀 없는 문장을 자네가 의도와 다르 게 부정적으로 해석하면서 또 불같이 화를 내."
대니 : 대니는 뉴욕에서 아모스와 함께 아파트에 머물던 어느 날 저녁에 꿈을 꾸었다. "꿈에 의사가 나더러 앞으로 6개월 살 거라는 거야. 그 래서 내가 그랬지. '내 인생의 마지막 6개월을 이런 쓰레기를 연구하며 보내리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정말 끝내주는군요.' 다음 날 아침에 아모스에게 꿈 얘길 해줬어."
아모스 : 그러자 아모스가 대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재미있다고 하겠지만, 난 아냐. 살날이 여섯 달밖에 안 남았어도 이 일은 나랑 마저 끝냈으면 해."

그런 말을 주고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니는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의 새 회원 명단을 보게 되었다. 아모스가 거의 10년간 회원으로 있는 곳이었다. 이번에도 대니 이름은 없었다. 이번에도 두 사람의 격차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아모스에게 물었어. 왜 나를 추천하지 않느냐고. 그 이유를 내가 모르는 바 아니지만." 두 사람의 상황이 서로 바뀌었다면. 아모스는 대니와 친구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모스는 대니의 절실함을 내심 약점으로 보았다. "내가 그랬지. 친구라면 그러면 안 된다고." 대니의 말이다. 

 

내가 그랬지. 친구라면 그러면 안 된다고

대니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모든 일에서 손을 뗐다. 게르트 기거렌처도, 공동 연구도 끝이었다. 대니는 아모스에게 이제는 친구 사이도 아니라고 했다. 대니가 말했다. "일종의 이혼이었어."

 

 

 

두 번의 이별

사흘 뒤에 아모스가 대니에게 전화를 걸어, 몇 가지 소식이 있다고 했다. 눈에 있던 종양이 악성흑색종으로 밝혀졌다고. 의사들이 아모스를 정밀 검사한 결과, 곳곳이 암투성이였다. 앞으로 잘해야 6개월 살 거라고 했다. 대니는 아모스가 그 소식을 전한 두 번째 사람이었다.
그 말을 들은 대니는 속에서 무언가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모스 가 그러더군. '우린 친구야. 자네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

우린 친구야. 자네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아모스는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극히 소수에게만 알리면서.

아모스는 그 소식을 1996년 2월에 들었고, 그때부터 자기 삶을 과거형으로 말했다. 아비샤이 마갈릿이 말했다. "아모스는 의사에게서 삶이 끝났다는 말을 듣고 내게 전화를 했어요. 그래서 만나러 갔죠. 아모스가 공항에서 나를 태우고 갔어요. 그리고 팰로앨토로 향했는데, 중간에 경치 좋은 곳에서 차를 세우고 죽음과 삶을 이야기했죠. 아모스에게는 자신이 죽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어요. 그때 아모스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자기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았죠. 초연함이랄까, 정말 놀리웠어요. 그러면서 '삶은 책이야. 얇은 책 이라고 해서 좋은 책이 못될 이유는 없지. 정말 좋은 책이었어' 그러더군요." 

삶은 책이야.
얇은 책 이라고 해서 좋은 책이 못될 이유는 없지.
정말 좋은 책이었어

아모스는 이른 죽음이 스파르타인처럼 살았던 대가라고 이해하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바르다 리버만에게, 기절해 폭약 위로 쓰러진 군인의 목숨을 살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리버만이 말했다. "그 한 번의 사건이 어느 면에 서는 자기 삶 전체를 결정했다고 했어요. 아모스가 그랬죠. '한번 그러고 나니까 그 영웅 이미지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지더라. 예전에 그렇게 행동했고, 지금은 그 이미지에 맞게 살아야 한다.' "

아모스는 전화도 제한적으로만 받았다. 경제학자 피터 다이아몬드의 전화도 그중 하나였다. 다이아몬드가 회상했다. 아모스가 며칠 못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런데 그때 제가 노벨위원회에 보낼 보고서를 막 끝낸 뒤였어요. 그는 가을에 수여될 노벨 경제학상에서 아모스가 몇 안 되는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노벨상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수여된다. 그는 아모스의 대답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아모스가 그 전화를 받을 때 (그곳에 있던) 바르다가 아모스의 대답을 기억했다. "알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노벨상은 제가 아쉬워할 대상이 아니라 는 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전화가 울렸다.

대니는 프린스턴에 계속 남았다. 애초에 아모스를 피해서 갔던 곳이다. 아모스가 세상을 떠난 뒤로 대니의 전화는 어느 때보다 자주 울렸다. 아모스는 떠났지만 두 사람의 연구는 살아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더 높아졌다. 사람들은 둘의 연구를 언급하면서 더 이상 "트버스키와 카너먼"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제는 "카너먼과 트버스키"라 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가을, 대니는 스톡홀름에 와서 발표를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대표적인 경제학자들과 더불어 노벨위원회 회원들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발표자는 대니를 빼면 모두 경제학자였다. 대니를 비롯해 그중 일부는 노벨상 수상이 유력했다. "오디션인 셈이지." 대니의 말이다. 그는 열심히 발표를 준비했다.

발표 주제는 아모스와 함께 작업하지 않은 것이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인들 중에는 그 판단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노벨위원회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두 사람의 공동 연구였기 때문이다. 대니의 설명은 이랬다. "공동 연구로 초청받았지만, 나 혼자서도 받을 자격이 충분하 다는 걸 보여주어야 했어. 문제는 그 연구가 자격이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자격이 있느냐니까."

대니는 발표를 마치고 프린스턴으로 돌아왔다.

만에 하나 노벨 상을 받는다면 다음 해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들은 대니를 직접 보고, 대니의 발표를 직접 들었다. 이제 대니가 수상 자격이 있는 지 없는지 판단할 것이다. 모든 수상 후보는 스톡홀름에서 이른 아침에 전화가 오는 날짜를 알고 있다. 물론 전화가 온다면. 2002년 10월 9일, 대니와 앤은 프 린스턴 집에 함께 있었다. 혹시나 하면서, 설마 하면서. 대니는 뛰어난 제자 대학원생 테리 오딘Terry Odan의 추천서를 쓰고 있었다. 솔직히 그 는 노벨상을 받으면 무엇을 할지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노벨상을 받으면 무엇을 할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 다. 전쟁 중에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는 상상의 삶을 한껏 키웠다. 상 상 속에서 그는 주인공이었다. 전쟁을 쉽게 승리로 이끌고, 쉽게 끝냈다.

하지만 대니답게 상상의 삶에도 규칙을 세웠다. 앞으로 일어날 수 도 있는 일을 두고는 절대 환상을 품지 않기. 상상에 이런 사적인 규칙 을 세운 이유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두고 상상을 했다가 그 일을 실현할 동력을 잃었던 경험 탓이다. 그의 상상은 워낙 생생해 '실제로 체험한 기분"이 들었고, 실제로 체험했다면 구태여 그것을 실현하려고 애쓸 이유가 없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인 전쟁을 절대 끝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전쟁을 쉽게 승리로 이끄는 시나리오를 공들여 짠들 무엇이 문제겠는가.

대니는 행여나 노벨상을 받는다면 무엇을 할지 상상하지 않으려 했다. 전화는 울리지 않았으니, 잘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 앤이 자리에 서 일어나 약간 아쉬운 듯이 말했다. "뭐, 괜찮아." 해마다 실망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었다. 해마다 전화기 옆에서 기다리는 노인이 있게 마련이었다.

앤은 운동하러 밖으로 나갔고, 대니 혼자 집에 남았다. 그는 항상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을 때를 대비하는 데 능숙했고, 크게 보면 이번 일이 치명타도 아니었다. 그는 자기 본래의 모습에, 그리고 자신이 한 일에 만족했다. 이제는 노벨상을 받았다면 무엇을 했을지 마음 놓고 상상할 수 있었다.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갔겠지. 수상 소감에 아모스를 추모하는 말을 넣었을 테고. 아모스를 아예 스톡홀름에 데리 고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모스가 대니를 위해 절대 해주지 못한 일을 대니는 아모스를 위해 해주었을 것이다. 노벨상을 받았다면 대니가 했을 수도 있는 일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자리로 돌아가 다시 테리 오딘의 추천서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화가 울렸다.

 

 

 

 


Daniel Kahneman receiving his Prize from His Majesty the King at the Stockholm Concert Hall. 

Copyright © The Nobel Foundation 2002 (Photo: Hans Mehlin)

 

 

그리고,  Daniel Kahneman은 2002년 12월 8일 스톡홀름 대학교 Aula Magna에서 수상 강연을 가졌다.

 

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 2002

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 2002 was divided equally between Daniel Kahneman "for having integrated insights from psychological research into economic science, especially concerning human judgment and decision

www.nobelpriz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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