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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워지기/문장 발효 과학

책 | 사물의 소멸.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by 청춘만화 2023. 1. 4.

개인적으로 최애 작가? 철학자인 한병철 님의 신간이 나왔음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바로 책을 빌려 읽으며 잠깐 잠깐 들었던 몇 줄의 문장과 몇몇의 생각을 기록해본다. 

서문. 소설 <은밀한 결정>에서 일본 작가 오가와 요코는 이름 없는 섬에서 벌어지는 일을 서술한다.(중략)
사물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소통 도취와 정보 도취다. 정보 곧 반사물反事物, Unding이 사물의 앞을 가로막고 사물을 완전히 빛바래게 한다. 우리는 폭력의 지배가 아니라 정보의 지배 아래 산다. 정보의 지배는 자유로 가장된다. 디지털화는 세계를 탈사물화하고 탈신체화한다. 또한 기억을 없앤다. 기억을 되짚는 대신에 우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한다. 요컨대 디지털 매체들이 기억 경찰을 대체한다. 디지털 매체들은 전혀 폭력없이, 또 큰 비용없이 임무를 완수한다. (중략)
오가와의 디스토피아와 달리 우리의 정보사회는 그리 단조롭지 않다. 정보는 사건Ereignis인 척한다. 정보는 놀라운 일이 주는 흥분 Reiz der Uberraschung을 먹고 산다. 그러나 흥분은 오래가지 않는다. 금세 새로운 흥분을 향한 욕구가 생긴다. 우리는 흥분을, 놀람을 목적으로 실재를 지각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정보 사냥꾼으로서 우리는 고요하고 수수한 사물들을, 곧 평범한 것들, 부수적인 것들, 혹은 통상적인 것들을 못 보게 된다. 자극성이 없지만 우리를 존재에 정박하는 것들을. p9

서문부터 의미심장하다. 특히 우리는 폭력의 지배가 아니라 정보의 지배 아래 산다. 라는 워딩은 불편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의 사건과 정보에 대해 기억을 대신해 저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 우리라 할 수 없구나.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M세대까지만 해당하겠다. Z세대의 대부분이 네이티브일테니 말이다.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변화들이 있어났다. 혈기왕성했단 서른, 이제 막 IT업계로 뛰어들던 당시에는 누구보다 모바일, 편리함과 공유, 오픈, 투명성의 가치관으로 치닫고 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물론 피로사회라는 역작과 그 이후 계속해서 출간된 한병철 작가의 책들을 통해 호되게? 멘탈을 후드려 맞은 후 조금이나마 변화가 일고 있는 것 같다.

스마트홈의 거주자는 염려가 전혀 없다. 디지털 질서의 목적은 필시 염려의 극복이다. 하이데거는 염려를 인간 실존의 본질적 특징으로 보는데 말이다. p14
이야기와 기억의 핵심 특징은 긴 시간에 걸친 서시적 연속성이다. 이야기가 비로소 뜻과 맥락을 만들어낸다. 디지털 질서, 곧 숫자의 질서는 이야기와 기억이 없다. 그리하여 디지털 질서는 삶을 파편화한다. p15

이 불편한 진실과 맏닿아 있는 IT 종사자 중 한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서비스 기획자 퍼널 마인드셋을 갖춰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퍼널분석은 마케팅에서 고객유치, 개발, 유지를 목적으로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조직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반응/대응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서비스 서사를 갖추기 위해 꼭 검토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디지털 질서의 표어는 이것이다. '존재는 정보이다.' 그렇다면 존재는 전적으로 처분 가능하고 조종 가능하다. 반면 하이데거가 말하는 사물은 인간 실존의 사물화되어 있음. 제한성의 화신, 사실성의 화신이다. 정보권은 양면성을 띠었다. 정보권은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주지만, 또한 동시에 우리를 증가하는 감시와 조종에 노출한다. p15
스마트홈 안에서 우리는 자율적인 지휘자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다양한 행위자들에 의해, 보이지 않는 메크로놈들에 의해 지휘당한다.

이 불편한 진실과 맏닿아 있는 IT 종사자 중 한 사람으로서, 믿거나 말거나, Web 2.0을 주도하고 있는 플랫폼. 특히 광고 매체. 특히 결제 관련 서비스. 특히 소셜 관련 서비스. 그러니까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앞서 언급했듯, 단순히 편의를 위해 사용했던 스마트폰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을 대신해 저장의 삶으로 전화시켰듯 우리는 그렇게 Web 2.0를 주도하는 다양한 플랫폼들에 의해 나의 존재를 나의 정보(금융, 취향, 개인정보..)를 무감각하게 노출시키고 있던 것이다. 아마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를 표방하는 Web 3.0, DID에 그치지 않은 SSI, 블록체인 생태계가 꿈틀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코인과 거래소로 상당 부분 그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현상은 2010년부터 J커브를 그리기 시작했던 IT가 오기 전 2000년대 IT버블과 유사한 흐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보엔트로피, 곧 정보 카오스가 우리를 탈사실적 사회 안으로 처박는다. 진실과 거짓의 구별은 사라진다. 이제 정보는 현실과 전혀 상관없이 과도현실적 공간에서 유통된다. 가짜뉴스도 엄연히 정보다. 그 정보는 사실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 효과다. 효과가 진실을 대체한다.
정보와 달리 진실은 존재의 굳건함을 지녔다. 지속과 불변은 진실의 핵심 특성이다. 진실성은 사실성이다. 진실은 사실성이다. 진실은 모든 변화와 조작에 저항한다. 그렇게 진실은 인간 실존의 토대를 이룬다. "진실을 인간이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개념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 법하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진실은 우리가 딛고 선 기반이며, 우리 위에 펼쳐진 하늘이다."
진실은 인간의 삶에 멈춤을 준다. 디지털 질서는 진실의 시대를 종료하고 탈사실적 정보사회를 개시한다. 탈사실적 정보 체제가 사실과 진실 위로 솟아오른다. 정보는 탈사실적 면모를 지녔다는 점에서 법정으로부터 달아난다. 아무것도 확고하지 않은 곳에서는 모든 멈춤이 사라진다.

 

쉴 새 없이 한 정보에 이어 다른 정보가 밀려드는 곳에서 우리는 진실을 위한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우리의 탈사실적 자극 문화에서 소통을 지배하는 것은 흥분과 감정이다. 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합리성과 달리 흥분과 감정은 매우 불안정하다. 따라서 이것들은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신뢰하기, 맹세하기, 책임지기도 시간 집약적 실행이다. 이 행위들은 현재를 넘어 미래로 뻗어나간다. 인간의 삶을 안정화하는 모든 것은 시간 집약적이다. 충실, 결속, 의무도 마찬가지로 시간 집약적 관행이다.  p19

스마트홈의 거주자는 염려가 전혀 없다. 디지털 질서의 목적은 필시 염려의 극복이다. 하이데거는 염려를 인간 실존의 본질적 특징으로 보는데 말이다. p14

자칫 뒤 p19의 말이 앞 p14의 말과 다르다 오해할 수도 있다. 눈여겨봤던 구간이다. 멈춤이 사라져 쉴 새 없이 정보과 밀려드는 일상은 숙성과 고민의 여유가 없다. 그러나 보니 디지털 소통 공간인 소셜미디어의 대부분이 흥분과 감정을 야기하는 콘텐츠가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적으로 그런 디지털 일상에서도 인간은 자연스럽게 인간 실존의 본질적 특징을 보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존하는 인간은 본인의 일상에 특별한 대한 기록과 관심사를 소셜 등의 채널을 통해 공유한다. 흥분과 감정과 관련된 콘텐츠를 쫓는 실존자의 특성은 자연스럽게 디지털 공간을 오염? 시킨다. 자연스럽게 불안정성, 불완전성을 야기한다. 앞서 하이데거를 빌어 언급했던 염려가 디지털 버전 또는 디지털/아날로그 혼합 버전으로 야기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는 true, false로 명확한 디지털 공간 입장에서는 명백한 오염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대응?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어쩌면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통해 과거 일론 머스크가 말했던 한 번도 본 적 없는 web 3.0을 그나마? 보다 더 실존적인 생태계로 확장시키는 방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시간 집약적 실행은 '하염없이 머무르기(거주하기) Verweilen'다. 정보에 매달리는 지각은 천천히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정보는 우리의 호흡과 바라봄을 단축한다. 정보 곁에 하염없이 머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물 곁에 하염없이 머무르며 숙고하기, 어떤 의도도 없이 보기는 행복의 공식이라고 할 만한데, 이것이 정보 사냥에 밀려난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를 쫓아 질주하지만 앎에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아두지만 zur Kenntnis nehmen 깨달음 Erkenntnis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는 차를 타고 온갖 곳으로 달려가지만 farhen, 단 하나의 경험 Erfahrung 도 하지 못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다. 우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기억을 되짚지 않는다. 우리는 친구와 팔로워를 쌓아가지만 타자와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정보는 존속과 지속이 없는 삶꼴을 발전시킨다.

맞다. 인정. 자 그래서 나는, 이제- 그리고 지금 뭘 할 수 있을까. 뭘 하면 될까. 무엇보다 가슴 뛰게 하는 대목이다. 

 

미래의 인간은 손이 없다. 더 이상 사물을 다루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더는 행위를 거론할 수 없다.
손은 노동과 행위의 기관이다. 반면에 손가락은 선택의 기관이다. 손이 없는 미래의 인간은 오직 손가락들만 사용한다. 그는 행위하는 대신에 선택한다. 그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판의 단추를 누른다. 그는 또한 아무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체험하고 누르려한다. p22

순간 움찔했다. 나는 심지어 손가락으로 자판을 누르는 일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독서 메모 중 본문에 대한 대부분의 기록은 타이핑이 아닌- 대부분 구글 랜즈를 통해 찍고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가로질러 복사한 후 붙여 넣기 하기 때문이다

 


몇 문자에 몇몇 생각을 담다보니.. 본의아니게 신간 서적에 대한 스포가 너무 많아지는 것 같다. 이후의 기록은 노션에 남기기로 한다. 혹시나 어쩌다 우연이라도 한병철 저자의 책과 관련된 북스터디를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이거나, 하고 싶은 이들이 있는 분들이 계시면- 언젠가 연락이 닿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함께 의견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길 바라며 이번 포스팅은 이만 마치도록 한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1051207 

 

사물의 소멸

스마트폰에서 셀피, 스마트홈, 사물 인터넷, 인공지능까지 디지털화한 세상에서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철학적 성찰. ‘사물 세계의 관상학자’를 꿈꾸는 한병철이 그려낸 정보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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