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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워지기/문장 발효 과학

북 | 사물의 소멸 그리고 어쩌면., DAO

by 청춘만화 2023. 1. 15.

 

정보는 사물처럼 쉽게 소유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보는 모두에게 속한다는 인상이 생겨난다. 소유는 사물 패러다임을 지배한다. 정보로 이루어진 세계는 소유가 아니라 접속 Zugang을 통해 통제된다. 사물이나 장소와 결속하는 것이 네트워크와 플랫폼에 잠시 접속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공유경제도 사물과의 동일시를 약화한다.

사물과의 동일시는 소유의 본질이다. '소유하다'를 뜻하는 독 일어 'Besitzen'은 '앉아 있다'를 뜻하는 'Sitzen'에서 유 래했다. 끊임없는 이동 강제가 벌써 사물 및 장소와의 동 일시를 약화한다.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서도 사물과 장소의 영향이 점점 더 약해진다. 정체성은 오늘날 주로 정보를 통해 제작된다. 우리는 소셜미디어라는 기반 위에서 우리 자신을 생산한다produzieren. '자기를 생산하다'로 직역되는 프랑스어 'se produire'는 '자기를 장면 안에 놓다sich in Szene setzen 를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연출한다 inszenieren.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공연한다.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이행은 제러미 리프킨이 보기에 생활세계의 결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교체다. 심지어 그는 새로운 인간 유형의 등장을 예언한다. "진입, 점유, '접속access'은 이제 막 시작되는 시대의 핵심 개념들이다. […] 경제생활에서 소유물에 대한 견해의 변화는 미래 세대들이 그들 자신과 삶 자체를 보는 관점을 영속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접속' 관계가 지배하는 세계는 다른 유형의 인간들을 낳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사물과 소유에 관심이 없는 인간은 노동과 소유권에 기반을 둔 "사물 도덕Dingmoral"에 예속되지 않는다." 그는 노동보다 놀이를, 소유보다 체험과 향유를 원한다. 경제도 문화적 단계에 이르면 놀이의 특징들을 나타낸다. 연출과 공연(퍼포먼스)이 점점 더 많은 의미를 얻는다. 문화적 생산, 곧 정보 생산은 점점 더 예술 창작 과정을 전용한다. 창조성이 그 생산의 구호가 된다.

사물의 소멸  p.27

 

 

개인적으로 2010년~ 20년대 IT업계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공감이 되는 부분과 또한 유념해야 점들이 많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의 어린시절 유년기와 대학 시절은 대량 생산, 예컨데 유니클로(일본), H&M(스웨덴), ZARA(스페인), GAP(미국), Forever 21(미국)와 같은 이른바 SPA 브랜드들이 점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너도 나도 앞다투어 벤치마킹하던 시대였다. 문득 사물 잉여의 시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현재 정보 과잉의 시대- 사물의 소멸이 있다면, 어쩌면 과거 사물 잉여의 시대엔- 다름아닌 관계의 소멸이 먼저 있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인간의 결핍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육체적 허기짐이 아닌 심리적 허기짐이 주는 사이드 이펙트를 우린 정보화 시대 이전부터 이미 느끼고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사물이나 장소와 결속하는 것이 네트워크와 플랫폼에 잠시 접속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맞다. 동의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점이 어쩌면 현대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와 더 닮아 있지 않은가 하는 점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이른바 모두가 이방인이 된 상태이다. 라떼의 관계를 떠올리며 변화를 목도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 현상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점에서 모두가 이방인의 입장이라면 사물과 장소의 결속은 이미 과거와 같은 긍정적 또는 본질적 리츄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네크워크에 잠시 접속하는 것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해결방안? 물론 궁극적일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바로 DAO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각 국과 그 국가 또는 시장의 이데올로기를 이미 바꾸어 놓았다. 롤백은 있을 수 없겠지만 개선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실질적으로 NFT는 무한대로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을 마치 오프라인의 사물과 같은 개체화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다이소에서 100만개 생산된 똑같은 슬리퍼도 내가 구매해서 사용하는 순간(물론 그 이전 생산이 완료된 순간부터..) 다른 진열대의 슬리퍼와는 다른 유일성을 갖는다. 과거에는 무한하게 복제할 수 있었던 디지털 정보였지만 지금은 원한다면 개별 개체화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 시장의 주도 세력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테고 현실적으로 대부분 금융적인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지만 말이다.. 

과거 디지털 소유권은 저작권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게재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저작물이 게재된 플랫폼에 사용자들의 접속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얻는 부가가치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왔다. 하지만 앞으로가 아닌 지금부터는 정보 그 자체를 소유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는 분명히 이전 디지털과는 다른 결이다. 

사물 잉여의 시대에는 협동 조합은 사실상 실패했다. 너무 이념적이고 너무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정보 잉여의 시대, 협동조합은 다르다 생각한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한 복제되던 마치 정성적이던 디지털 정보가 정량으로서의 단위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SSI와 같은 개인의 데이터를 기업 또는 기관이 아닌 개인의 권한으로 점차 이양되는 것이 상식의 범위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정보 잉여의 시대에는 정보가 구분될 수 없는 정보로 기록되는 개인의 정보 또한 고유 가치로 식별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DID를 시작으로 점차 그 변화가 활발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흔한 매타버스 또한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점차 자리를 잡지 않을까 한다. 괜한 3D 아바타나 ARVR과 같이 서비스는 없고 금융과 기술만 덕지 덕지 붙어있는 디지털 장비 덩어리가 아니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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