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think normal
느린 날들이 모여 멀어져간 오늘../삼팔광땡

언론, 정치 그리고 콘텐츠에 대한 담론

by 청춘만화 2019. 3. 13.

언론, 정치 그리고 콘텐츠에 대한 담론 



언론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언론의 지위가 상실되기 시작한건 소셜네트워크라는 수입된 미디어들이 대중에 유행하면서 부터이다.

사실 언론이 잘못한 것은 없다. 굳이 과오가 있다면 '뭔가를 잘못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안음'에 있다.[각주:1]

때론,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가 공영방송의 뉴스나 신문보다 빠르고 정확[각주:2]하다. 


이른바 뉴노멀의 시대가 온 것이다.

목숨을 걸로 사진기 하나 목에 매고 전장을 누비며 

어떻게든 온 세상에 신속히 정보를 전달하고자 했던 언론의 본질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방송도 방송이지만 지면으로 이뤄지던 신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반인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겠지만, 사실 이는 엄청난 사건이다. 

사실 공감이 잘 안온다.. 여러 방면으로 비유가 필요할 것 같다.

이를테면 4등하다가 5등하는 것과, 계속 1등하다가 2등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지 않은가. 

어쩌면 대배우나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가 예능프로에 출연을 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고뇌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중고등학생들이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의 교육에 더 신뢰를 보내는 상황과도 비슷할 수 있겠다.

또 어쩌면 아이들의 물음에 항상 답을 했던 어른들이 스마트폰 또는 컴퓨터, 미디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물어봐야하는 상황과 비슷할 수 있겠다.

이는 마치, 일본어를 모르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물어보는 일제시대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또는 한글을 모르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한글 물어보는 4~50년대의 상황과도 비슷하겠다. 

멀리 나아가서 수십면 1등을 하던 미국이 등뒤 또는 이미 앞에 있는 것 같은 중국을 보고 허둥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일상의 헤게모니가 붕괴되거나 재편성되고 있는 한가운대에 우리 세대들이 낑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 구구절절한? 예들이 그러했듯 언론도 이제 적응을 한것 같다.

최근의 언론은 이제 엔터테인먼트로 포지셔닝한 느낌이다. 

첨단 그래픽, 퍼포먼스, 모바일 웹, 어플리케이션, 아나운서 또는 기자들의 스타일 등 볼거리와 재미 요소들이 많다. 


독점하던 지면을 이제 아무도 보지 않는다. 

뒤늦게 들어간 디지털 디바이스 시장에서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독자들의 관심과 클릭, 공유하기 또는 댓글을 받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시작했다. 

악플도 상관없다. 

클릭 자체가 돈이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노이즈 마케팅 또한 전략으로 평가받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제대로 발은 담군 것이다

광고와 링크 배너의 다채로움은 이미 쇼핑몰 또는 포털의 광고 배너들과 다르지 않다.


세상이 조용한 것 만큼 공포가 없다. 언론에게는 말이다.

마치 세상 사람들이 서로 돕고 행복하게 살면 판사,변호사가 망하는 것과 같을 수 있겠다.

마치 전국의 청년과 부모들이 각자 자신의 집을 갖을 수 있다면, 부동산 부자들이 가장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같겠다.

또는 북한이 평화를 추구하는 것만큼 큰 공포는 없다. 극우 일본과 미국, 그리고 국내 일부 보수에게는 말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굳이 언론이나 정치적 이슈를 들추지 않아도 일상에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예컨데 매일 야근하다가 그렇게 정시퇴근~ 노래를 부르다 막상 딱, 정시퇴근하게되면 갑짜기 멍~, 뭐하지? 하는 것과 같다.

또는 다리가 부러진 환자가 퇴원만했으면 하고 바라다가 퇴원 후엔 무좀이 빨리 나았으면 하는 바램이 커지는 것과 같다.


왜 이런 아이러니가 발생할까? 

바로 콘텐츠의 존재가치가 전복되는 상황을 눈앞에서 직면했기 때문이다.

일상의 블랙스 정도의 상태가 아닐까한다.


너무 돌아왔는지 모르지만 이제 본론. 

최근 주류 언론 그리고 제 1 야당의 정치행보가 자극적이고 이념적인 언행과 태도를 일관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다. 


댓글을 보면 

기존 언론의 순기능적인 역할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의 지키고자하는 수오자들과 정의를 기준으로 심판하려는 정직한 다수의 대중들의 난투극이 벌어진다.

때론 언론이 다루고 있는 그 사건 자체보다 더 큰 이슈를 야기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가? 대응을 하거나 팩트를 체크하고 정정하기를 요구할, 그럴필요가 있는가? 

낭비다. 오히려 매몰 비용이 더 크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비난 할 수 없다. 단지 몸담고 있고 의지하는 바탕이 달랐을 뿐이다. 

그들은 단지 기존의 본질 그리고 그 본질을 토대로 쌓아온 콘텐츠, 즉 존재이유가 붕괴되고 있음을 직관했고 몸부림을 치고 있을 뿐이다.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이 더 움직일 수록 더 깊이 빠지는 것을 모를 뿐이고 도움의 손길을 지적으로 해석하거나 구조의 막대기를 횟초리로 해석하는 피해의식이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 그들이 더 잘 산다. 잘 살아왔다. 억울하다. 피해자는 나와 같은 대중인데. 왜 그래야하는가. 

악플보다는 무플이 답이다. 

살인자를 심판하기 위해 자신 또한 살인자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쩌면, 냉철히 생각해보면 과거로 돌아가 서로의 자리가 뒤바뀐 상태로 시간이 지났다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로 살아 있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그 언론과 정치는 원래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언론으로 돌아가야한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이목을 끌기 위한 정치가 아닌 정책을 위한 정치를 해야한다.

얼마 전엔 불가능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지금은 대부분의 언론이 엔터테인먼트고 많은 정치인이 연예인처럼 활동하고 있기때문에

지금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ONLY ONE이 될 수 있는 최적기 이다.


그리고 

복귀한 본질의 터전에서 새롭게 콘텐츠를 쌓아야한다.

이는 어벤져스를 참고하면 딱. 좋지 않을까 한다.

과거 어벤져스는 독일 나치와 소련 등을 대상으로 악당을 그려나갔다. 

하지만 그들도 악당이 없는 세상은 지옥과 같았을 것이다.

그들은 한동안 고전했다. 모두가 알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성공을 이뤘다. 악의 패러다임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주로 떠났다. 때론 개인의 지극히 철학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언론과 정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끼인 시대 이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 

새로운 콘텐츠를 통해서 말이다.

구태와 비상식을 통해 또는 자극적인 언행을 통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떳떳하고 정직하게 세안의 주목을, 그리고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성공도 해본 사람이 한다는 말이 있다. 더이상 자격지심에 빠져서 패착의 상황을 연출하지 않았으면하는 바램이다.



  1. 아주 중요한 화두이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기존 사업군들 또한 이러한 이슈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시장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역할에 대한 상식과 요구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문제가 아닌 것들이 새롭게 문제로 정의되고 반대로 과거에는 문제라고 치부시되던 것들이 최근들어 정당하다는 입장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옳고 그름, 정의와 적패가 한 세대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본문으로]
  2. 그도 그럴것이 기자는 사건을 전달하는 메신저이다. 따라서 세상 모든 일과 사건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면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엔 고된 학습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반면 개인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특정 사건과 연관된 당사자 또는 관련라면? 이를테면 경제이슈 또는 국제분쟁과 같은 첨애한 전문성이 복합적으로 필요한 경우 전문성과 객관성은 한계에 직면할 수 밖에 없고 개개인이 공유하는 소셜미디어와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