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귀가 길에 발견한 손자장 집과 메이커 카페! 오호! 불맛이다. 그리고 이렇게 고기가 많이 든 짜장은 처음이다. 카페는 조용하다. 게다가 3D 프린터와 레이저 커터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곳도 있었구나. 짧은 시간이지만 편한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경치가 참 좋다.
한적한 카페에서 안락한 소파에 앉아 예민함이라는 무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지각은 걸러내기의 과정이다.(p.127)
그런데, 순간 - 뒷 목이 뻐근했다... 뭐지? 오늘 한 거 없이 가볍게 산행만 하고 맛있는 자장과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있는데 왜지? 적어도 세, 네 시간 안에 두통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통증이 뒷목과 어깨를 타고 흘렀다. 오후 세시 무렵이었다. 헉- 뭐냐옹???
그런데 지금, 이 포스팅을 작성하며 지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오후 8시.
사실 짧고 가벼운 코스는 다음과 같았다.
짧고 가벼운 코스.. 였지만 등산로가 아직 정비 중이어서 서바이벌과 같았다. 분명 오르는 길목에서는 '아..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구나- 등산로를 만들려고 산을 이렇게 헤집어 놓다니..' 하며 혀를 찼다. 하지만 개발 중인 등산로가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서자 서바이벌 그 자체였다. 오랜 시간 쌓인 낙엽에 등산로는 유명무실했다. 그냥 우거진 산 길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분비물.. 등 산 짐승들의 흔적도 많았다. 다양한 종의 벌들도 만나 볼 수 있었다.
오늘 새로운 산행길에서 가장 큰 수확은 산 중턱에 벚꽃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처음엔 공원 또는 절인 줄 알았다. 넓었다. 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망설이다가 그 길을 따라 들어가 보았다. 한 노인분은 만났고 개인 사유지라고 말씀하시며 어서 나가라고 하신다. 개들이 달려들 수 있으니 조심히 나가라고 하셨다. 순간, 네다섯 마리의 개들의 짓는 소리가 철컹 거리는 목줄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순간 경직.. 재빠르게 공원 같은 개인 사유지에서 빠져나왔다.
한적한 카페에서 안락한 소파에 앉아.. 있는 동안 삼십 분 넘게, 레이저 커터로 합판을 지지는, 나무가 타들어 가는 냄새와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공사장의 소리가 가득 차 있어 열심히 지각을 걸러가며 책을 읽어야 했다. 아, 중간에 카페 안에 말벌이 들어왔고 하필 나와 50CM 거리에서, 그것도 두 번이나 대면하게 되어.. 생존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눈치?를 무릅쓰고 자리를 세 번 정도 옮겼다.
아.. 나 스스로의 상태는 제대로 지각하지 못하고 주의력이 온통 바깥으로만 향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지각하고 보니 위 내용들이 이제야 착- 감겼다.
'머리로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를 읽자마자 띵- 했다. 물론 이미 중심과 지각의 주의력을 잃어 얻게 된 두통도 있었지만, 너무 내 얘기 같았기 때문이었다.
머리로 생각하는 건 좋지 않다. 머리로 이론을 숙고하는 것은 자꾸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의도는 좋지만 자꾸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거나 한참을 못 미치는 상태로 만든다. 머리는 자꾸 당위성을 이야기하거나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지금까지도 잘해왔지 않냐고 다그치거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만든다.
우리의 경계를 무시하는 사고방식이다. 우리의 마음은 자꾸 우리로 하여금 경계를 확장하고 한계를 넓힐 것을 중용한다. 다른 사람에게 감정 이입하게 만들고 우리를 박애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즉흥적으로 마음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계를 넘어 무례하게 스스로를 희생하는 경우가 생긴다. 무리의 경계가 어딘지 아는 유일한 존재는 신체이다. 그중 특히 배다. 몇 숟가락 먹어야 배가 부르고 몇 숟가락 이후 해로울지, 컴퓨터 앞에 얼마나 오래 있을 수 있는지, 언제 휴식을 취해야 하는지.. 물론 아플 때가 아니라 늘 제때에 신체를 지각한다는 전제하에서.
경계를 존중하고 잘 지키고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지속적으로 신체와 접촉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체를 센서로 활용해야 한다. 소속감, 인정, 평판 때문에 맞춰 사느라 자신의 신체 지각을 잃어버리기 쉽다. (p.137~139)
내가 뭐라고 세 번 이상이나 불러서 스타우트 해 준 회사.라고 생각하며 다녔다. 그 회사에 이방인으로 들어와 내 회사처럼 신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그 당시 회사를 몸이라고 치면, 나 자신은 이 글귀에서 말하는 머리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지난 삼 년간 내 신체는 경계를 한참 넘어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회사도 그렇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생각 자체가 박애적인 태도일 수 있겠지만 정치가 생명이듯 회사 또한 그렇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경계를 정해 놓지 않은 것이 가장 큰 화근이었다는 것을 한번 더 깨닫게? 된다. 비용과 기간에 대한 확답을 받았어야 하는데 경영진의 입장과 처지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나 스스로의 경계를 무너뜨렸던 것 같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 명확히 경계의 선을 긋고 기다렸어야 하는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과 난 직원이니 따르자, 2년을 기다린 기회다, 이렇게라도 진행될 수 있는 것이 어디냐?, 등등의 마음이 나의 경계를 확장하고 한계를 넓힐 것을 중용하지 않았나.. 하며 이 글에 감정을 이입해본다.
경계가 없는 삶은 과다 에너지를 소모하고, 에너지 충전이 힘들다.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는 우리에게 심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적절한 경계로 둘러싸인 영역만이 우리에게 힘과 지지를 제공할 수 있고 에너지를 집중하게 할 수 있다.
신체만이 우리의 경계가 어디인지 말해 줄 수 있다. 머리는 알지 못하며 감정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경계는 동시에 우리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 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경계가 없는 광활한 공간에서는 에너지가 사라지고 동기부여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면 행동 영역의 경계를 잘 만들어야 한다. (p.142)
너무 중요한 말들이다. 내 몸인데 내가 자각할 수 있는, 자각하려는 시간이 너무 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이 포스팅을 타이핑하는 순간에도 여러 지각을 느껴본다. 키보드를 클릭하는 느낌, 그 소리, 주변의 소음. 아, 지금은 저녁 9시. 동네 마을 도서관에 있다. 10시에 마감이라 한 사람 두 사람 자리를 정리하는 분위기이다. 그 와중에 내 머리를 자극하는 통증, 뻐근한 목. 치과 치료 중인 이빨에서 느껴지는 뻐근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메모한 내용은 모두 포스팅하고 일어나야지 하는 마음의 소리들.. 역시, 이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로모로 마음은 나의 경계를 확장하고 한계를 넓힐 것을 중용하고 머리는 자꾸 당위성을 재촉한다..
경계를 침범하는 것이 아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사실 이런 일들을 용인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명확한 신호를 줄 때까지 자신들의 경계와 관계를 시험해본다. (p.153)
아이들은 타인 또는 사회, 조직으로 대입해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경계와 관계를 시험해보는 것은 비단 아이들 뿐만이 아닐 것이다. 온전하게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그와 같을 것이다.
다만 현대인들만 그렇지 못하다. 신자유주의에 최적화, 그리고 고도화되고 있는 조직문화와 모바일 단말기와 인터넷 환경에서 비롯되는 정보화 사회가 큰 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 분야에서의 예민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계와 관계를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나 또한, 그중 상위 집단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 다른 사람들의 입장, 관심사, 태도, 견해 들을 더 열린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다른 시각과 견해를 만남으로써 자신의 시각과 사고방식을 확장시키거나 성숙한 시각을 지닐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특정한 색깔로 그려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마음을 스쳐 지나가는 많은 생각의 파편을 의식적으로 지각하면 자신의 생각과 외부에서 들어온 생각을 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자신의 신체 느낌을 지각하고 진짜 자신의 느낌과 외부로부터 온 느낌을 의식적으로 구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p.146)
원래 계획은 메모한 내용을 모두 포스팅하면 책을 마저 읽고 귀가하려 했지만.. 신체의 경계가 재촉하는 관계로 오늘은 여기에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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