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 | 문학과 지성사, 한병철
향기로운 시계 중에서
중국에서는 향인 香印 이라고 불리는 향 시계가 19세기까지 사용되었다. 유럽인들은 향인을 20세기 중반까지도 보통 향꽂이인 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향불의 연기로 시간을 잰다는 생각, 더 나아가서 시간이 향기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관념 자체가 아마도 낯선 것이었으리라. (p.94)
침향 도구 향인, 향저 - A.TYPE
침향 도구 향인, 향저 - B.TYPE
부끄럽게도.. 20세기 유럽인들은 차치하고, 나는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제야 구글링으로 찾아보지만 만족스러운 검색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검색 과정에서 우리나라에도 향 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불가에서 사용된 향전 香篆 이 바로 그것이다. 향전은 시간과 쓰임에 따라 만든 향의 형태가 달랐고 향과 시간을 주관하는 향실에서 시간을 주관하는 향사 香詞 를 통해 운용되었다고 한다.
조금 더 찾아보니까.. 현실 세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과거와 동일한 방식인지, 과거와 같이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그 맥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 들었다. 물론 x2 안도감이 든 이유는 모르겠다.
시간을 측정하는 수단으로써 향은 많은 점이 물이나 모래와 구별된다. 향기가 나는 시간은 흐르거나 새어나가지 않는다. 아무것도 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향냄새가 공간을 채운다. 향기는 시간을 공간화하고, 그리하여 시간에 지속성의 인상을 준다. (p.96)
향기는 종종 과거의 나 또는 과거의 할머니, 옛 고향, 학창 시절 학교, 등하교 길 골목 등을 회상할 수 있는 기억의 LINKer 역할을 해준다.
후각은 시간적 사건들을 결합하고 엮어서 하나의 이미지로, 하나의 서사적 형상으로 만들어낸다. 이미지와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향기는 해체의 위협에 직면한 자아를 하나의 동일성 속에, 하나의 자화상 속에 안착하게 해 줌으로써 자아에게 안정성을 돌려준다. 향기가 지닌 시간적 연장성 덕택에 자아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 (p.80)
누구나 한 번쯤, 어릴 적 할머니 또는 어머니 향기를 우연히 옷이나 이불, 베개 또는 특정한 공간에서 동일한 향기를 인지하고 순간, 자기도 모르게 벅차오르는 행복 또는 추억의 감정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향인 香印 이건, 향전 香篆 이건 고 녀석 참 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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